어쩌면 우리 모두 가해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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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 모두 가해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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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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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관 기자의 책 이야기
▲ 이경관 기자

  수 클리볼드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고

 “몸이 떨릴 정도로 강한 느낌이었다. 마치 머리 위로 맹금이 지나가며 우리 위에 그늘을 드리우는 것만 같았다. 내 품안의 완벽한 갓난아이를 보면서 나는 강한 예감에 압도되었다. 이 아이가 나에게 엄청난 슬픔을 안겨줄 거야.”(109쪽)
 1999년 4월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 두 명은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해 학생과 교사 13명을 죽이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이들은 총기를 난사한 후 자살했다.
 ‘콜럼바인 총격 사건’은 지금까지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 중 가장 비극적이고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이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 수 클리볼드가 사건 16년만에 쓴 일종의 회고록이다.
 수 클리볼드는 이 책 속에서 그토록 착했던 아이가 왜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추적해가며 자신이 몰랐던 아이의 진짜 모습을 찾아 헤맨다.
 책 속에는 아이가 한 잘못으로 고통 받은 많은 사람들에게 죄스러워 아이를 잃은 슬픔도 느낄 수 없었던 한 엄마의 슬픈 세월이 담겨있다.
 표지에 실린 천진한 얼굴을 한 딜런과 그런 그를 사랑스럽게 보는 수의 모습은 충격적인 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을 떠올릴 수 없을정도로 행복해보인다.
 대체 이 가족은 왜 이런 고통 속에서 살게 됐을까.
 우리는 그동안 많은 언론에서 범죄자들이 ‘문제 있는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고 들어왔다.
 그러나 딜런의 경우는 전혀 달랐다.
 딜런의 가정은 지극히 평범하고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가정이었다.
 수는 딜런과 딜런의 형 바이런의 양육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남편 톰 또한 지극히 가정적인 남자였다.
 이들 부부는 아이들과 함께 대화하고 운동하며 끊임없이 소통했다.
 흔히 말하는 바른 양육의 표본이었던 셈이다.
 딜런이 다녔던 콜럼바인 고등학교가 위치한 콜로라도 주 리틀턴은 미국에서도 살기 좋은 동네다.
 로키 산맥을 낀 풍광이 좋고, 범죄율이나 우울증 발병율은 미국에서 가장 낮은 동네라고 한다.
 그렇다면 대체 딜런은 대체 왜 무고한 친구들과 교사들에게 총기를 난사했을까.
 수는 콜럼바인 사건을 분석한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를 들려준다.

 딜런과 함께 총기를 난사했던 에릭은 능동적이면서 살인 충동이 있는 아이였고 딜런에 수동적이며 또 자살 충동이 있는 아이였다는 것.
 서로 다른 둘이 만나 시너지를 일으킴으로써 콜럼바인의 비극이 일어났다는 것.
 수는 에릭을 피하고자하는 딜런의 행동을 깊게 보지 못했고, 에릭으로 인한 딜런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했다며 자책한다.
 사건 이후, 딜런이 먹은 항우울제가 발견됐고, 딜런을 쓴 일기에는 삶을 비관하는 내용이 다수 적혀 있었다고 한다.
 수는 많은 연구결과를 통해 딜런이 총격을 난사한 이유에는 우울증이 있었다고 말한다.
 수는 딜런이 저지른 문제가 단순 총기 문제, 왕따 문제 등 하나의 원인이 아닌, 철저히 실패한 자신의 육아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밝힌다.
 딜런의 우울이 이 사건을 야기했다는 것.
 겉으로 웃고 있지만, 속으로 울고 있는 내 아이의 아픔과 우울을 보지못한 자신의 탓이라고.
 결국 수 자신도 딜런에게는 가해자였던 것이다.
 “자살과 살인 사이에 종이 한 장 차이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자살하는 사람 대부분은 살인과 무관하지만,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은 자살 성향 뷄문에 그럴때가 많습니다.”(마리사 란다조 박사의 말, 276쪽)
 수는 자신의 아들 딜런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죽이게 됐다는 결론을 내놓는다.
 딜런에게 가족도 친구도 있었지만 그 어느 누구에게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고 진정한 위로를 받지 못했다.
 무심함이라는 무자비함은 딜런을 죽게했고, 그런 딜런으로 인해 13명이 죽었고, 24명이 다쳤으며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살게 됐다.
 “딜런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산을 움직여서라도 고치려 했을 것이다. 에릭의 웹사이트나 총기에 대해 알았다면, 딜런의 우울증에 대해 알았다면 다르게 대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아는 아이를 기르기 위해 내가 아는 최선의 방식으로 길렀고, 내가 모르는 존재가 되어버린 그 아이를 기르는 최선의 방식은 알지 못했다.”(424쪽)
 수는 총격사건 후, 자살예방활동가의 삶을 살게된다.
 그 활동을 통해 수는 딜런으로 인해 고통받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죄하고, 딜런을 지키지 못했던 자신을 반성한다.
 수는 자신도 모르게 딜런에게 행했던 그 무심함을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며 무심함이 무자비함으로 번지지 않도록, 더이상 우리가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돕는다.
 무심함이라는 무자비함은 어쩌면 우리 모두 일상 속에서 행하고 있는 작은 행동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웃으며 건네는 서툰 인사가 누군가에게는 삶의 희망이, 또 누군가에게는 우울을 치유하는 아주 작은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이 가해자의 엄마 수 클리볼드가 오늘날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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