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정신과 민주적 권리를 옹호한 인간 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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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정신과 민주적 권리를 옹호한 인간 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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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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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영 포항유스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클래식 이야기

[경북도민일보]  △ 듣지 못하는 장애를 극복한 작곡가 베토벤
 베토벤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30대부터 불후의 명작을 작곡하기 시작하는데 30살에 처음으로 교향곡 1번을 시작으로 3번 ‘영웅’, 5번 ‘운명’, 6번 ‘전원’, 9번 ‘합창’ 교향곡, 피아노소나타 ‘발트슈타인’과 ‘열정’, 피아노협주곡 ‘황제’,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세계 4대 바이올린협주곡 중 1곡 선정)’ 등 인류 역사상 길이 남을 최고의 걸작을 작곡했다.
 머릿속에 이미 완성된 작품을 옮겨 적어 틀린 곳, 고친 곳 하나 없이 작곡해 낸 모차르트와는 달리 음표 하나에 10번 이상 고친 흔적이 있을 만큼 노력으로 작곡한 베토벤의 강인한 의지를 알 수 있다.

 △ 고귀한 창조자, 베토벤
 베토벤은 말한다.
 “나는 예술가이며 창조자이다. 따라서 왕족, 귀족, 보다 더 고귀하다.”
 대대로 물려받은 신분(영주,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등)의 이유로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인생이 결정된 신분이 아니라 본인의 노력에 따라 성공하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 잘살 수 있는 나라를 갈망하며 나 베토벤은 창조자이기 때문에 당신들 금수저들보다 더 고귀한 존재라고 말하며 다녔다.
 이처럼 베토벤은 당당한 예술가적 기질의 소유자로 항상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당시 봉건사회에 맞지 않는 민주주의적 철학을 흠모했다.
 이러한 베토벤의 인생철학이 담긴 작품이 여럿 있지만 그중에 걸작 교향곡3번 ‘영웅’을 소개한다.
 자유의 정신과 민주적 권리를 옹호한 인간 베토벤은 나폴레옹을 ‘이상적인 영웅’이라 여기고 그를 위해 교향곡 3번을 작곡하게 된다.
 총보 첫 페이지에 보나파르트, 그 아래에 루트비히 반 베토벤이라 적어 나폴레옹에게 헌정할 계획이었다.
 교향곡 영웅의 내용은 대부분 프랑스 시민 대혁명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의 생각과 철학이 담긴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곡의 이해를 돕기 위해 프랑스 혁명에 대해 간략히 서술해본다.
 17~18세기 루이14세와 루이15세, 루이16세를 거치면서 프랑스 왕정은 쌓여가는 빚을 빚으로 갚고, 또 그 빚은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결국 루이 16세 치세에 가면 국가예산의 반 이상이 선대왕들이 남긴 빚을 갚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와중에도 프랑스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빚으로 미국독립전쟁을 지원했고, 결국 국가 재정은 파탄에 이르렀다.
 나라는 망해 가는데 특권층이라는 귀족들과 성직자들은 세금을 내지 않고 호사스런 생활을 누리는 반면 시민 계급과 평민 등은 파탄난 국가 재정을 떠받쳐야만 했다.
 18세기에 프랑스의 세금은 200% 이상 늘었지만, 세금의 100%가 하층민들에게만 부과돼 사회구조적으로 모순이 있었다.
 이에 파리 시민들은 국왕의 군대로부터 자신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해 본격적으로 프랑스 대혁명(1787~99년)이 시작된다.
 혁명 성공 이 후 혼란스러운 공화정치체제가 들어서고 왕족과 귀족에게 부역한 사람들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프랑스 혁명 정부가 진행한 진압 작전을 가지고 근대사 최초의 대규모 학살이라고까지 부르는 역사가들도 있을 만큼 혁명군의 만행은 귀족이든 성직자든 농민이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대략 17만 명을 파리 콩코드 광장에서 학살했다.
 혁명정부의 공포정치가 민심을 잃었을 때 이를 진압하면서 등장한 인물이 바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다.

 나폴레옹이 집권하고서야 정치가 겨우 안정되었고 프랑스 혁명은 완전 종식되고 나폴레옹은 국민의 영웅이 된다.

 △ 교향곡 3번 ‘영웅’
 교향곡 3번 영웅(Symphony No.3 ‘Eroica’ in E major, Op 55) 속의 1 악장 Allegro con brio 는 생기 있고 힘차게 빠르게 연주하라는 뜻이다.
 프랑스 대혁명을 묘사하며 대담하고 힘찬 첫 소절의 표현과 다음에 흘러나오는 주제의 음악은 민중의 힘이 자유를 쟁취하는 것이 마치 한 번에 싹 쓸려가는 힘찬 물결처럼 표현했다.
 2악장 Adagio assai 는 매우 느리게 ‘장송곡’이다.
 당시 프랑스는 혁명 이후 끝없는 숙청과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그리고 인근 국가들과의 끝없는 전쟁으로 국민들이 혁명이라는 말 자체에 진절머리를 내던 상황에 나폴레옹은 영웅으로 부상됐다.
 정치적 능력이 뛰어났던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원정의 성공, 새로운 정부 전복 기도를한 세력을 제압하고 이러한 가운데 3명의 통령 가운데 한명으로 당선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명성과 군부의 지지를 바탕으로 종신 통령으로 선출되자 곧바로 본인 스스로가 프랑스 황제로 변절된다.
 그 후 베토벤은 자신의 영웅에 크게 실망해 “나의 영웅은 죽었다.”라는 모티브로 2악장을 영웅의 장례식으로 만들어버렸다.
 원래는 총보 첫 장에 나폴레옹에게 헌정하기 위해 보나파르트라고 적어 놓았었는데 베토벤은 총보의 종이를 찢어 버리고 영웅의 추억을 기리기 위해 ‘영웅 교향곡’이라 이름을 붙였다.
 영웅의 2악장은 누가 들어도 영락없는 장송곡이다.
 주변에 기억될만한 위인이 있다면 영웅 2악장을 들으며 그분의 행적을 상상해보라.
 마치 긴 영화를 한편 본 듯한 느낌으로 그분은 이미 당신에게는 영웅이 돼있을 것이다.
 영웅의 영구마차는 엄숙하게 묘지로 향하고 있다.
 만감은 수레가 삐걱거리는 애처로운 소리에 뒤섞여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면서 아프게 한다.
 마음과 심령이 울리는 큰북소리, 한 발작 한 발작 묘지로 향하는 영웅의 슬픈 이야기를 상상해보라.
 음악은 좋은 것을 기억하게 해주고 우리의 마음을 힐링하고 풍요롭게 해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베토벤은 1827년 3월26일 이른 봄 때 아닌 눈과 천둥치던 날 57세의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당시 빈에서는 유명인이 죽으면 머리카락을 잘라오거나 두개골을 훔쳐 소장하는 일이 비일 비재했다.
 하이든과 마찬가지로 베토벤의 머리카락과 두개골은 파헤쳐져 개인 소장 가에게 보관 되다가 근대에 와서 베토벤의 머리 유해를 찾아 영원한 안식을 맞이했다고 한다.
 베토벤의 장례식 날에는 빈의 모든 학교가 휴교를 하였고 2만 명이 넘는 군중이 모여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음악사적으로 보면 베토벤의 사망으로 고전주의는 막을 내리게 되고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음악 낭만주의 음악의 장이 활짝 열리게 된다.
 베토벤은 떠났지만 그의 음악은 이제 인류의 가장 위대한 예술로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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