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학교는 근대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한 동산 류인식(柳寅植)선생의 발의로 1907년 임하면 천전리 내앞마을에 있던 가산서당(可山書堂)을 보수 설립해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장소로 1919년 3·1운동 때 주축이 됐던 주역이 협동학교 출신이란 이유로 1919년에 문을 닫았다.
당시 교장은 김병식(金秉植), 학감에는 류창식(柳昌植)이 취임했고 류인식은 교무주임을 맡았으며, 교사로는 김동삼(金東三), 이강연(李康演), 이관직(李觀稙), 김기수(基箕壽) 등 주로 한성사범학교 출신의 신진 청년들로 교단을 꾸려 독립운동의 산파역할을 했다.
당시 사립학교가 초등교육과정인 것에 비해 협동학교는 중등교육과정으로 교육과정은 3년제 중등과정으로 본과 진학을 위한 예비과도 두었으며 1908년 수업을 시작해 1911년 3월에 1회 졸업생을 배출한 이후 1918년 5회생까지 졸업했다. 한편 협동학교 출신 인사들에는 석주 이상룡 선생을 비롯 1923년 국민대표회의 의장을 맡았던 김동삼 선생과 유인식 선생 등이 있다. 안동/권재익기자 k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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