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적 장애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아 전설로 거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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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 장애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아 전설로 거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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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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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 지휘자 ‘토스카니니’
▲ 김일영 포항유스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경북도민일보]  △신체장애를 극복하고 우주를 정복한 스티븐 호킹
 지난 3월 14일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세상을 떠났다. 필자와 같은 음악가가 갑자기 웬 과학자의 이야기를 꺼내느냐고 혹자는 반문할지 모른다. 예술과 과학은 물과 기름 같아서 서로 섞이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 알고 보면 두 영역 모두 인간의 심오한 상상력과 창조적인 두뇌활동을 요구하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하버드 대학 입학사정관들은 지원자들이 악기 하나쯤은 빼어나게 잘 연주할 수 있는 것을 수학능력만큼이나 중요하게 따진다고 한다.
 호킹은 1942년 영국 옥스퍼드셔 주 옥스퍼드에서 태어나, 옥스퍼드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축복받은 인재였지만 1960년대 초 21세에 루게릭병을 앓기 시작해 5년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고 근육이 마비되었음에도, 좌절하지 않고 연구 활동을 지속해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 분야에서 성과를 얻었다. 1988년 출간한 저서 ‘시간의 역사’는 전 세계적으로 1000만 부 이상이 팔린 세계적 베스트셀러에 올라 큰 인기를 끌면서 전 세계에 20세기를 대표하는 물리학자로 이름을 알렸다.
 몸은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했지만, 호킹은 물리학 일반상대성 분야, 특히 블랙홀에 관한 창조적 상상력을 즐기며 물리학의 새로운 지평선을 열었다. 호킹의 연구는 그 이전까지는 블랙홀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기존 과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장애를 가진 호킹이라는 과학자가 안일하게 있던 전 세계 과학자들에게 큰 자극을 준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나쁜 시력 때문에 오히려 성공한 토스카니니
 스티븐 호킹처럼 음악계에서도 장애를 오히려 성공의 발판으로 삼은 이가 있으니 바로 토스카니니이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1957)는 이탈리아의 지휘자, 첼리스트, 작곡가이다. 20세기 최고의 클래식 음악 지휘자로 평가받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원래 첼로 연주자였다. 그는 아주 심한 근시로 연주 중에 악보를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언제나 악보를 다 외워서 연주회에 나가야 했고 심지어 곡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악기의 악보들도 늘 암보했었다.
 1886년 6월 30일 이탈리아 로시 오페라단과 그 오케스트라가 브라질의 리오 데 자네이로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공연 했을 때의 일화이다.
 막이 오르기 직전에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사이에서 음악적인 연주 문제로 크게 언쟁이 일어나 싸움으로 확대되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오페라 지휘자는 공연을 바로 눈앞에 두고 극장을 떠나 버렸다. 그 얼마나 무책임한 행동이었던 것인가? 그 즉시 응급처방으로 공연을 위해 부지휘자가 대신 지휘봉을 잡았지만 큰 실수를 연발하는 바람에 관객들의 야유에 더 이상 공연을 지속시키지 못하고 음악회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사실 이정도면 공연을 포기하고 관객들에게 입장료와 위로금을 주어야 되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는 공연기획회사 사장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몇몇 단원들이 한소리로 말했다. “우리에게는 모든 악보를 외우며 연주하는 첼리스트가 있어요. 그는 음악의 흐름과 연주 방법을 모두 잘 알고 있는 친구입니다. 가능하다면 ‘토스카니니’에게 지휘를 맡겨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 즉시 사장은 이 사태를 수습하라며 토스카니니에게 허락하게 되고 얼떨결에 스물 한 살의 젊은 토스카니니는 졸지에 오페라 지휘자가 되어버렸다.

 그것도 3시간가량 연주되는 그랜드오페라인 베르디의 ‘아이다 (Aida)’로 첫 데뷔무대를 갖게 되는 그의 인생 전환점이 되는 순간이었던 것이었다. 관객들은 급하게 바뀐 젊은 지휘자를 보며 여차하면 야유를 퍼부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객석에 앉았지만 관객들의 예상과는 달리 토스카니니는 지휘자 보면대 위에 놓인 악보를 덮어버리고 한 치의 실 수 없이 거침없이 지휘를 시작했다.
 결국 1막이 끝나자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토스카니니는 공연을 훌륭하게 마무리했고, 청중들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불멸의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이 사건으로 토스카니니는 세계적인 명지휘자로 발돋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다른 연주자처럼 눈이 좋았다면 악보를 외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시력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악보를 외워야만 했고, 그의 장애로 인해 그는 20세기 명지휘자로서의 전설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가 일생동안 다루었던 작품의 레퍼토리는 53명의 작곡가가 남긴 117개의 오페라와 175명의 작곡가가 남긴 480개의 관현악곡으로 집계 되었다.
 토스카니니의 암보방법을 지켜본 지휘자 피에르 몽퇴는 “한사람의 머릿속에 그만큼의 양을 집어넣는다는 것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일” 이라고 말하였고 이탈리아의 유명한 오페라작곡자 푸치니는 “토스카니니의 신비로운 암보능력은 기적과 같다”라고 표현하였다.
 188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19세 나이로 첼리스트 첫 데뷔하여 이탈리아 청년 고전 음악가의 위용을 뽐낸 그는 이후 1898년 이탈리아 밀라노 스칼라 음악극장 수석 지휘자, 190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의 지휘자, 1926년 뉴욕 관현악단의 상임 지휘자를 거쳐, 1937년 NBC 교향악단의 지휘자가 되었다. 명쾌한 리듬과 강렬한 음량 증감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현대적인 연주 양식을 확립시켰다.
 독일의 ‘푸르트뱅글러’와 함께 지휘자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그는 극히 정확한 템포와 치밀한 합주, 박력 있고 신선한 연주로 ‘칸텔리’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리카르도 무티’, ‘클라우디오 아바도’,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등 후대 지휘자들의 해석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토스카니니에게도 악보 전체를 암기한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평생을 거쳐 새로운 악보들을 날마다 외워야 했던 토스카니니는 얼마나 부지런해야 했을까. 이렇듯 나쁜 시력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만의 특출한 암기력을 발달시켜 부단히 노력한 결과 성공할 수 있었던 토스카니니는 연주자들로부터 절대적인 존경을 받았다.
 육체적 장애가 그에게 불행이 아니라 성공의 지렛대가 된 것이다. 토스카니니는 이렇게 말했다. “좋은 환경이 아니라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좋은 환경만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눈앞에 닥친 어려움에 좌절하고 포기하고 있지나 않는가? 생각의 관점을 조금만 바꾸어 보면 불가능도 성공으로 가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글을 읽는 독자들 중 자녀가 장애를 겪고 있다면 스티븐 호킹 박사와 전설적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이야기를 기억하라 말하고 싶다. 장애는 포기할 이유가 아니라 성공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당신의 자녀도 21세기의 토스카니니, 스티븐 호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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