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챔버에 갇힌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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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챔버에 갇힌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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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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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올라 절벽을 마주하고 야호라고 소리치면 음의 반사작용으로 목소리가 되돌아온다. 이를 메아리라 하는데 음향학 전문용어로 표현하면 에코라고 한다. 챔버는 좁은 공간이다.

이 두 단어를 합성한 에코챔버를 우리말로 해석하면 ‘반향실’이란 뜻으로서 특수재료로 벽을 만들어 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메아리처럼 울려 발산하는 모든 소리가 똑같이 되돌아오는 방을 말한다. 이에 착안하여 같은 정치적 이념이나 성향, 또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자신들의 생각이나 신념이 증폭되고 더욱 공고해지게 되는 현상을 ‘반향실 효과’라고 한다.

물리적 제약이 있었던 아날로그 시대에 비해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디지털세계에서 소셜 네트워크는 동일한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매우 쉽고 빠르게 결집시켰다. 한두 번의 클릭으로 앱을 열고 들어서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리고 자신들과 견해가 다른 사람들을 헐뜯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 자기만족과 편향된 이념은 더욱 견고해진다. 어떤 이슈에 대한 옳고 그름이나 진위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들의 주관에 부합되는가의 여부만 따져 배척하거나 수용한다. 이른바 자신들이 원하는 정보만 받아들여 옳다고 여기는 ‘확증편향’에 빠져드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장소와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핸드폰이 전 국민 유튜브 시대를 열어 놓은 뒤에 더욱 가속화 되었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알고리즘은 이용자의 입맛에 맞춰 필터링한 정보를 우선 제공한다.

검색이력, 구독한 컨텐츠 등 과거이력에 기반하므로 항상 비슷한 정보를 먼저 접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주장만 자꾸 듣게 된다. 사실상 에코챔버에 갇힌 것이나 다를 바 없게 되는 것이다. 반복적인 말이 지속적으로 뇌리에 주입되면 자신이 옳다는 확신에 빠져 이념은 점점 돌덩이처럼 굳어진다. 이쯤 되면 어떤 논리로도 그 생각을 바꿀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은 병리현상이 비단 사이버공간에서만 존재할까. 오프라인상에서 사람들의 관계형성도 같은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심지어 부모자식간의 관계조차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다투다가 부자의 연을 끊어버렸다는 뉴스를 보면 우리사회가 얼마나 지독하게 서로 편향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사회갈등의 여러 요소 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진보와 보수 간의 이념대립이다. 이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지구촌 어느 나라보다 우리나라가 가장 극렬하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조국 장관 당시 광화문에 모인 인파들이 서로 상대진영을 향해 저주하고 욕설을 퍼붓는 광경을 보지 않았던가. 경찰이 진영을 분리시켜 충돌을 막지 않았다면 아마도 끔찍한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을 부추기는 것은 결국 정치인들이다. 자신들을 지지하는 진영에만 초점을 맞춰 그 세력을 공고화시키려는 결집전략 때문이다. 이제 이 나라에서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아래 타협과 협력의 꽃이 피는 동산은 보이지 않는다. 동조하지 않거나 또는 굴복하지 않는 대상을 경멸하고 적대시하는 혐오의 강이 흘러 이미 메우기 힘들만큼 골이 패였는데 그 물살은 점점 거세어져 협곡은 더욱 깊어져 간다.

전설에 나오는 이야기다. 히말라야 산맥의 설산에 사는 공명조라는 새가 있었다. 하나의 몸에 머리가 둘 달린 새였다. 이 둘은 서로 생각이 달라 자주 다투었는데 어느 하나가 다른 머리하나를 죽이게 되자 결국 몸 전체가 죽었다는 이야기다.

모든 것을 쪼개고 쪼개어 0과 1이라는 이진법으로 구성된 비트의 가상공간속에서 사회통합을 이루는 매개체(인물중심)도 사라지고, 정치적 영웅도 배출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국가 간의 분쟁, 노사 간의 이해관계 충돌, 서로 다른 문화의 이질감에서 발생되는 혐오, 정치적 이념간의 갈등, 지역 간의 감정대립 그리고 종교, 언론 등 모든 분야에서 분권화되고 구조적으로 객체화 되어가는 이 세상은 지금 번영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공멸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철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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