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전에 우리는 꼭 물어봐야할 질문이 하나 있다. ‘나는, 내 가족은, 우리는 지금 안전한가?’
우리 나라 대한민국의 국민안전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법과 제도적으로는 세계 최고다. 다만, 그 제도를 운영하는 인적 수준(직무에 대한 책무성, 전문성 그리고 국민들의 안전의식과 그 실천 등)은 그와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제도적으로 국민의 생활안전을 공공서비스의 개념으로 도입해 국민의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위험(벌집 제거, 동물구조, 생활안전조치 등)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 나라가 유일하다.
일례로 소방안전에 있어서 우리 나라보다 선진적 행정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미국, 일본, 유럽 몇몇 나라의 소방안전행정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특히, 소방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는 일본의 경우에도 생활안전에 대한 공적 개념이나 공공서비스 차원의 제도적 장치는 없다.
일본 동경 소방청을 방문하였을 때, 생활안전에 대한 행정서비스에 관해 질문을 했더니 아직 그 개념에 대한 정립도 되어있지 않다고 했다. 즉, 일상생활속 개인적 위험에 대한 안전관리는 전적으로 개인에게 맡겨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의 생활안전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소방관으로서는 고무적일지 모르나 국민들은 119를 전폭적으로 믿고 있다. 최소한 자신과 가족들에 대한 안전책임의식은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가족을 위해 응급처치와 심폐소생술 그리고 비상 시 대응요령 정도는 알아야 되지 않을까?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자주한다. 재난이나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으면 90%, 자신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으며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50%, 소방관이 필요하다면 10% 정도만 지킬 수 있다고……
소방관이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소방관이었기에 가장 소중한 것을 지켜낼 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쯤, 그 당시에는 소방에도 응급처치라는 개념이 희미할 때였는데 어린 맏이가 사탕을 먹다가 목에 걸려 죽을 뻔 한 사고가 있었다.‘켁’ 소리와 함께 앞으로 넘어진 아이를 뒤집어 안고 보니 얼굴이 까맣게 변해 있었다. 순간적으로 오른 무릎을 세우고 아이의 가슴과 배를 세워진 무릎 위에 엎어놓고 등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사탕이 바닥에 구르는 소리가 들리고 아이의 얼굴을 들어보니 얼굴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렇게 큰 아이를 살렸다.
오늘도 우리는 자기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꿈꾸며 건강한 걸음으로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일상 중에 우리는 코고 작은 각종 위험에 노출돼 있다. 아무런 대비나 훈련없이 위험상황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과거에 본 영화 속 대사 한마디 생각난다. ‘무엇이 중헌디?’
그렇다. 우리는 안전을 잊은 채 행복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행복이라는 누각의 주춧돌은 ‘안전’으로 놓기를 바란다. 최원호 영덕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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