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들끓었던 ‘항일의병 영웅 발상지’ 경북을 되돌아보다
  • 김희동기자
뜨겁게 들끓었던 ‘항일의병 영웅 발상지’ 경북을 되돌아보다
  • 김희동기자
  • 승인 2023.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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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돌석 의병장군, 영해의진 참가 후
산·바다 장소가지리않고 항쟁 펼쳐

의병항쟁·계몽운동 병행 김도현은
영해의 대진서 자정순국 의지 결행

이육사·조재만·이원대·이진영 등
‘독립운동 배출 성지’ 영천 백학학원

수많은 독립운동 사적지 도내 자리
독립운동 관련 국보, 단 1건도 없어
역사 가치 위해 국가 차원 관리 절실
-대구경북 독립운동의 역사를 찾아서-
사적지를 통해 보는 독립운동 활동의 흔적

경북은 우리 역사를 이끈 자랑스러운 고장이며 민족문화의 텃밭이다. 특히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는 불굴의 저항정신을 보여 주었으며 이것은 그대로 독립운동사에도 남아 있다. 이곳은 한국 독립운동의 성지이며 항일 의병의 발상지요, 정부가 포상한 독립유공자와 나라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친 자정 순국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지역이이다. 세계 식민지의 독립운동과 견주어보아도 으뜸이라 평가할 만하다.

영덕군에서 지난 3월18일 2000여명의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이 함께한 가운데  4년만에 코로나19로 잠시 중단됐던 ‘영해3.18독립만세문화제’ 횃불행진을 하고 있다.
영덕군에서 지난 3월18일 2000여명의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이 함께한 가운데 4년만에 코로나19로 잠시 중단됐던 ‘영해3.18독립만세문화제’ 횃불행진을 하고 있다.

독립운동 사적지의 문화재 등재와 관리에 대한 필요성

올해 3월 이계형 교수(국민대) 자료에 의하면 국가지정문화재 가운데 독립운동 관련한 국보는 한 점도 없다. 보물은 2891건 가운데 11건에 불과하다. 안동 임청각이 1963년 1월 보물로 지정된 이후 10년 가까이 지나 윤봉길 유품·안중근 유묵(1972.8) 등이 이에 포함됐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들어서도 백범일지(1997.6.), 황현 초상(2006.12), 최익현 초상(2007.2) 등이 선정되는 정도에 머물렀다. 최근에는 등록문화재였던 말모이 원고·조선말 큰사전 원고(2020.12), 김구 서명문 태극기(2021.10), 진관사 태극기(2021.10), 이봉창 의사 선서문(2022.12) 등이 보물로 승격·지정됐다.

조사 결과, 많은 사적지가 기념 표석(비)이나 안내판 설치, 홍보 등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부족한 경향이 있다. 또한 독립운동 사적지를 문화재로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으며, 국내 독립운동 사적지는 성격에 따라 분류하고 문화재로 지정된 것을 확인해 놓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대부분 역사적 가치가 높지만 현재 문화재로 등재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적지 분석과 역사적 가치 부여를 통해 문화재로 선정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관련 기관과의 긴밀한 의사소통을 통해 사적지의 문화재 등재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며, 독립운동 사적지는 역사적인 가치를 고려해 국가적 차원에서 적절한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
 

강한 선비정신과 항일 의병의 발상지

경북남부보훈청 관할로 경주, 포항, 영천, 영덕, 울진, 울릉 등 6개 지역이 있다. 영천에는1908년 2월 산남의진의 제3대 대장 최세윤이 제4차 의병진을 결성한 ‘산남의병 제4차 결성지인 거동사’, 1906년부터 1908년까지 산남의진의 대장으로 활약한 정환직·정용기 부자가 살았던 ‘충효재’ 집터가 있다.

또 1921년 설립된 신학문 교육기관인 ‘백학학원’, 1919년 4월12일 영천 장날에 3.1운동 만세시위가 시작된 영천공립보통학교 3.1운동 만세 시위지 등이 있다.

포항에는 1919년 3월22일 덕성장날을 이용해 만세시위를 펼쳤던 ‘덕성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 1907년 9월 산남의진이 일본군을 맞아 전투를 치르다 정용기, 손용각, 이한구 등이 순국한 ‘산남의병 전투지-죽장면 입암’이 있다.

경주에는 1919년 3월15일 경주읍 장날을 이용해 만세시위를 펼친 ‘경주장터 3.1운동 만세시위지’와 1896년 6월17일 경주연합의진이 경주성을 공격한 ‘경주연합의병전투지-경주성’이 있다. 1915년 12월24일 권영만과 우재룡이 세금 운반 우편마차를 습격한 경주시 광명동의 ‘경북 우편마차 습격 의거지-소태고개’가 있으며, 1915년 조직된 광복회의 총사령관 박상진 집터가 외동읍 녹동리에 있다.

영덕에는 의병항쟁을 펼쳤던 김도현이 1914년 11월7일 바다로 걸어 들어가 자결 순국한 ‘김도현 순국지’와 1919년 3월 18일과 19일 영해면 주민들이 성내시장에서 출발해 영해주재소를 공격하며 만세 시위를 펼쳐던 ‘영해주재소 3.1운동 만세시위지’가 있다. 영릉의진 의병장 ‘신돌석 생가’가 축산면 도곡리에 있으며, 1924년 의성단원 김홍진과 김창진이 군자금 모집활동 과정에서 일제의 경찰과 총격전을 벌였던 ‘의성단 의거지-장사주재소 터’가 남아 있다.


울진에는 1919년 4월13일 정변항, 남병표 등이 주도로 부구리 사람들이 만세 시위를 벌였던 흥부장터 3.1 운동 만세 시위지가 있으며 1927년 12월 신간회 울진지회 발기총회가 개최된 ‘신간회 울진지회 발기총회 개최지-선일 약국터가 남아 있다.
 

신돌석 생가터를 관광객 차희준(서울· 62)씨가 둘러보고 있다.
신돌석 생가터를 관광객 차희준(서울· 62)씨가 둘러보고 있다.

▲평민 의병장, 신돌석 생가

신돌석 생가 지도

신돌석(신태호·1876-1908) 장군은 1896년 영해의진에 참가했다고 전한다. 그는 1906년 3월 영릉의병장 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의병을 일으켰다. 그 뒤 영해·울진·원주·삼척·강릉·양양 등 경상도 강원도 일대에서 태백산맥의 산간지대와 동해의 해안선을 오르내리며 의병항쟁을 펼쳤다.

1907년에는 일본군 편을 들던 영덕의 관공서를 격파했으며, 영양에서는 일본군과 격전을 벌여 물리쳤다. 경주의 대산성에서도 수일간 전투를 벌였으며, 영덕의 조현에서 적과 싸워 크게 이겼다. 10월에는 영해경무서를 습격해 경찰을 추방했다.

영덕군 축산면 소재 신돌석 장군 유적지에서 해마다 추모제를 지내는데 올해는  지난 6월 20일 순국 110주기 추모제향을 봉행했다.
영덕군 축산면 소재 신돌석 장군 유적지에서 해마다 추모제를 지내는데 올해는 지난 6월 20일 순국 110주기 추모제향을 봉행했다.

1908년 1월에는 평해의 독곡에서 일본군을 무찔렀다. 3월에는 안동·울진·삼척·강릉 등지의 의병과 연합해 군세를 키우고, 춘양·황지·소봉동 등지에서 적을 격파했다. 이후 신돌석은 만주로 가려고 준비하다가 눌곡에서 김상렬형제의 기습을 받고 숨졌다.

 

김도현 지사가 도해 순국한 자리에는 바다를 바라보고 도해단(蹈海壇)이 서 있다.
김도현 지사가 도해 순국한 자리에는 바다를 바라보고 도해단(蹈海壇)이 서 있다.

▲김도현 순국지

김도현 순국지 지도

의병항쟁과 계몽운동으로 구국·항일의 의지를 펼치던 김도현 지사는 대한제국이 무너지자 자결을 결심했다. 그가 자결순국을 결행 한데는 스승 이만도의 영향이 컸다. 김도현은 1896년 선성의진의 중군장으로 활약하면서 이만도와 사제의 인연을 맺었다. 스승의 단식투쟁을 지켜보던 지사는 함께 자결을 결심했으나 이만도는 만류했다. 당시 김도현의 부친이 생존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뜻을 잠시 미뤘다가 1914년 부친이 운명하고 상을 치른 뒤 자정순국의 의지를 결행했다. 이는 자신의 육신을 적의 땅이 아닌 도해 즉, 바다에 걸어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순국이었다. 1914년 11월 7일 절명시를 남기고, 영해의 대진에서 바다 속으로 걸어 들어가 생을 마감했다.

지난 13일  백학학원 안팎 제초작업 및 정비를 하고 있다. 백학학원은 영천 전자고등학교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지난 13일 백학학원 안팎 제초작업 및 정비를 하고 있다. 백학학원은 영천 전자고등학교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독립투사의 산실, 백학학원

백학학원 지도

일제의 식민 교육정책에 대항해 1921년 1월 영천군 화남면 안천리에 설립된 신교육기관으로 영천지역 민족교육의 산실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학원의 설립을 이끈 인물은 면우 곽종석과 회당 장석영의 제자인 창산 조병건이다.

백기만, 서만달 등의 교사들이 백학강습회를 개설해 민족의식과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민족교육을 실시함으로써 민족 저항시인 이육사를 비롯해 조재만, 이원대, 이진영 등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요람지다.

영천시는 훼손된 백학학원을 2016년부터 본 채 복원사업을 시작으로 국비와 지방비 5억6천만원을 투입해 2017년 12월 준공했고, 대문채도 2019년 시비 1억5000만원을 들여 복원했다. 영천전자고등학교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지난 13일  백학학원 안팎 제초작업 및 정비를 하고 있다. 백학학원은 영천 전자고등학교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지난 13일 백학학원 안팎 제초작업 및 정비를 하고 있다. 백학학원은 영천 전자고등학교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광복회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찾아서

광복회 경북도 남광희 양덕군 지회장 .
광복회 경북도 남광희 양덕군 지회장

▲광복회 경북도 남광희 영덕군 지회장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오명도 있지만 의외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면서 성공한 사람들이 꽤 있다. 특히 민족주의 우파계열 독립운동가들은 정치, 학계에서 높은 위치에 오른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대부부의 후손들은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친일파의 후손은 잘 살고 독립유공자들의 후손들은 힘들다’라는 통념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남광희 영덕지회장은 남호연 지사의 손자로 영덕지회장을 10년째 맡고 있다. 현재 광복회에는 33명이 회원으로 있으며 대부분 농사일에 종사하고 있다.

남호연(1889.7.11-1939.4.24) 지사는 1919년 3월18일 영덕군 영해면 성내동 장터에서 오후 1시경 미리 제작한태극기를 들고 김세영·정규하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했다. 장날에 모인 2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일경을 구타하고 주재소를 습격해 공문서 등을 훼손하는 한편 주재소 건물과 일인 가옥을 파괴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이다가 피체됐다. 같은 해 6월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및 소요로 징역 6월형을 언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남광희 지회장은 “영해는 남씨 집성촌으로 그 당시 많은 친척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렀다”며 “조부와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어려운 점이 많았으며 국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도움을 받고 있지만 주변에서 ‘조상을 잘둬서 혜택을 받고 있다’는 탐탁지 않게 여기는 분들도 있어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독립유공자의 자녀 및 손자·녀에게는 대학 등록금 면제 군복무 등 혜택이 주어진다고 하지만, 사실 후손들에 대한 대우는 썩 좋지 못하다.
 


도움주신분들: 영천전자고등학교 정세훈 교사, 경북북부보훈지청 이호성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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