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듣기에 따라 긍정과 부정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오만해지면 그 어떤 비판도 비난으로 들리고, 독선에 빠지면 그 어떤 잘못도 소신으로 착각하게 된다는 여운은 한동안 뇌리에 감돈다. 그리고 그에게 다시 물었다. “만약 지구가 멸망해서 다른 별로 이주할 때 오직 한 가지만 가져가야 한다면 무엇을 가져가겠느냐”고 하니 천하의 옹고집인 그도 촌각의 망설임도 없이 “한국의 가족제도인 「족보」를 가지고 가겠노라”고 대답했다.
사실 책은 무생물이기는 하나 입 없이 말하는 살아있는 정혼(精魂)의 응결체로 얼이 담긴 그 서적을 두고 어느 지성인은 “인류가 자연으로부터 선물로 받지 않고 인간의 정신으로 창조해 낸 그 수많은 물건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의 세계다“라고 한 말은 인간이 언어동물로 남아 있는 한 변함없는 만고의 진리이다.
이 진리를 실현시키기 위한 책의 저술에는 자료의 확보는 절대적 필요 불가결이라 어떤 학자는 이를 두고 “학문은 거지 동냥자루와 같아서 무엇이든지 집어넣는다. 그런 연후에 골라잡는다.”고 자료 수집의 집요한 의욕을 역설한다. 그러나 집필자는 항상 편식은 몸을 상하게 하지만 편견과 곡학 그리고 표절의 낙인은 천형(天刑)보다 무서우며 때로는 붓을 꺾게도 하고 오히려 성명(性命.인성과 천명)까지도 해치는 흉악무도한 현상으로 뒤돌아 온다는 것을 명심하고, 보편타당성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
학자는 모름지기 모방과 차용은 허락받지 못하고 벌판에 맨몸으로 선 고독한 존재에다 지향하는 정신적 가치는 ‘기개(氣槪)에 지조’로 소신을 굽히지 않고 주관을 관철한 숙명적 투사이어야 한다.
학문은 사실에 기초한 ‘해석’에 치중하다 보면 흔적을 찾아 본체에 접근하는 외곬이 있을 뿐 타협을 모른다. 그러므로 학문탐구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할 창조의 길이며 고독한 구도자의 길이다.
책은 언제나 미래지향적이라 미진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모자람은 보태고 넘쳐 남은 깎기를 거듭하다 보면 어느덧 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고인(古人)을 사귀게 되고 수백 년 뒤의 벗에게 자신을 확인시키는 것도 책 만이 내 비치는 묘한 아량의 매개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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