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대회 불운딛고 “이번에 꼭 메달”
경기도중 넘어진 말에 깔려 끝내 숨져
7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승마클럽에서 열린 제15회 도하 아시안게임 종합마술 개인·단체 크로스컨트리 도중 낙마 사고로 숨진 김형칠(47·금안회)은 경력 31년의 베테랑이다.
한영고등학교, 건국대를 졸업한 김형칠은 용인대학교에서 승마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까지 받아 명실상부한 `승마박사’로 유명했다.
1976년부터 선수로 나선 김형칠은 1985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면서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김형칠은 아시안게임에만 이번이 다섯번째 출전이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때 처음 국가대표로 나서 동메달을 땄던 김형칠은 1994년 히로시마, 1998년 방콕, 그리고 2002년 부산대회에 이어 도하대회까지 아시안게임 출전을 이어왔고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도 출전했다.
그러나 대회마다 말이 병이 나는 등 말썽을 부려 메달과는 별다른 인연을 맺지 못했다. 1986년 서울대회 동메달과 2002년 부산대회 때 조카 김균섭(25)과 함께 출전한 종합마술 단체전에서 딴 은메달 등 2개의 메달은 그의 기량으로 볼 때 다소 부족했다.
이번 도하 대회 대표 선발전에서 꼴찌인 4위로 간신히 태극 마크를 단 김형칠은“이번이 마지막”이라며 꼭 메달을 따겠다고 다짐했었다.
김형칠이 이렇게 오랫동안 승마 선수로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승마인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부친 고(故) 김철규 씨는 1964년 도쿄올림픽에 출전했던 한국승마 1세대였다. 2002년 1월 향년 72세로 별세한 김철규 씨는 1976년 은퇴한 뒤 대한승마협회 경기력향상 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김형칠이 5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태극마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집안 대대로 내려져 온 말(馬)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한국생활체육승마연맹 김인 회장은 “그는 진정한 승마인이었다”면서 “말에 미친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경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북도민일보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