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한동윤] 지난 8월 18일 경기도 수원 A호텔에 수십 명의 스님이 투숙했다. 이들은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 주지스님 선거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온 스님들이다. 스님들은 20일 오전까지 30여 객실을 2박 3일 예약한 상태였다. 이들이 묵고 떠난 호텔 8층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경인일보는 그 장면을 이렇게 보도했다. “스님들이 사용한 객실마다 빈 위스키-소주병과 맥주캔 등 술병과 스님들이 먹었다고는 믿기 힘든 치킨과 족발 등 고기류와 라면과 과자 같은 인스턴트 식품 포장 쓰레기로 수북했다” “또 쓰레기 봉투에는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도 있었다. 스님들이 묵은 호텔 8층은 흡연 객실이었다.” 수도정진해야 할 불자가 아니라 시정잡배만도 못한 행태였다는 것이다.
경인일보는 기막힌 아수라장을 접한 일반 투숙객들의 말도 전했다. 호텔손님 C씨는 “교황이 오셨을 때 성직자들에 대한 존경심이 솟구쳤는데 스님들의 행태를 보니 기가 찼다”며 “스님들이 대거 오셨길래 중요한 일이 있는 줄 알았는데 결국 술판, 흡연 자리였느냐”고 황당해 했다는 것이다. “밤새 술판을 벌인 스님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날 오후 1시부터 용주사에서 진행된 산중 총회에 참석해 용주사 주지스님 선거에 참여했다”고 이 신문이 전했다. 도대체 주지를 스님들 직접선거로 뽑는다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부터가 불자답지 않다.
용주사 문중의 큰스님인 송담 스님은 조계종 종정을 맡고 있는 진제 스님과 함께 `남 진제, 북 송담’으로 불리며 한국 선불교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용주사의 회주(절집 최고 어른)를 맡고 있으며 말사 격인 용화선원의 원장도 겸하고 있다. 송담 스님은 경허-만공-전강으로 내려오는 법맥을 잇는다. 이 때문에 용주사와 용화사는 모두 전강 스님 문중이 중심 그룹이다.
난장판 용주사 주지 선거는 기어코 대형 사고를 일으키고 말았다. 용화선원장 송담 스님이 지난 19일 대한불교조계종 탈퇴 제적원을 제출한 것이다. 송담 스님뿐만 아니라 환산, 동해 스님 등 임원진 10명이 본사 용주사에 이어 총무원 사찰교무 팀에 제적원을 제출했다. 이들은 “법보선원의 수행 전통과 현 대한불교조계종의 수행 환경의 차이로 조계종 승려의 의무를 내려놓고자 한다”고 제적 신청 이유를 밝혔다. 조계종의 수행 방식으로는 도저히 승려의 영혼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불교의 총본산인 조계종이 말사에 의해 파문(破門) 당한 격이다. 송담 스님은 상좌(절집의 제자)들을 향해 자신의 탈종으로 인해 불이익이 우려되거나 부담이 되는 자가 있다면 언제든 다른 스승을 찾아도 좋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조계종과 아예 연(緣)을 끊겠다는 의지다. 호텔방에 틀어 박혀 술과 담배, 기름진 족발로 회식하며 속세(俗世)를 속이는 짓을 더 이상 하지 말라는 최후통첩이다.
용주사는 송담 스님의 제적 신청을 반려했다. 총무원도 “문중의 큰어른 일을 경솔하게 처리할 수 없어 반려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용주사 주지 선출의 후폭풍은 더 거세지고 있다. 용주사 본사 주지 선거가 끝난 뒤 용주사 말사인 건물만 앙상했던 포교당을 수원 포교의 중심도량으로 만드는 등 30여 년 동안 수원사를 이끌어 온 성관 스님을 일방적으로 교체함으로써 신도들의 반발을 산 것이다. 술판, 먹자판, 돈봉투판 용주사 주지선거가 막장으로 치닫고 말았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이래 천주교 신도가 급증하고 있다. 나눔과 희생, 그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 교황의 헌신에 감동받았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밑에는 위스키나 족발, 화투 같은 속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불교계에 송담 스님 같은 큰 어른이 있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누가 살이 타는 기름 냄새 진동하는 곳을 도량(道場)이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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