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한동윤] 4·13 총선 전만해도 새누리당 대권 후보는 다양했다. 김무성 전 대표가 앞서나갔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모두 가능성있는 잠룡(潛龍)으로 꼽혔다. 여기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까지 잠재적 후보로 분류되면서 새누리당은 행복한 고민을 즐겼다.
더구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호남(湖南)으로부터 사실상 파문(破門)당하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역시 “과연 대권후보감인가?”라는 끊임없는 의문에 휩싸이면서 새누리당은 콧노래를 불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4월 13일 밤 사정은 정반대가 되고 말았다. 오 전 서울시장과 김 전 지사가 참혹하게 낙선했고, 김 전 대표는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보따리를 쌌다. ‘옥새 파동’은 그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은 ‘주홍글씨’를 남겼다. 김 전 대표는 유승민 의원에게 여권 대권후보 ‘1위’ 자리까지 내줬다. 국민일보가 실시한 18~19일 여론조사에서 유 의원이 17.6%로 2위 김 전 대표(10.7%)와 6.9%p나 차이를 벌인 것이다.
그렇다고 유 의원이 여권의 대권주자 반열에 제대로 오른 것도 아니다. 그에 대한 지지가 대부분 새누리당 지지층이 아니라 야권 지지층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박근혜 대통령에 저항하는 인상을 준 데 따른 야권 지지층의 의도적인 ‘몰표’다. 그는 새누리당 지지층으로부터는 3.6%를 얻어 김 전 대표, 오 전 서울시장, 김 전 경기도지사, 홍준표 경남도지사, 나경원 의원(5.2%), 정몽준 전 의원, 남경필 경기도지사에 이어 8위로 꼴찌를 기록했을 뿐이다. 반면 야권 지지층에서 유 의원은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가 여권의 대권주자로 나서면 지지율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는 얘기다.
4선에 성공한 정우택(충북 청주상당) 의원은 “경상도에 큰 인물이 없어 (충청에서) 대통령이 나올 절호의 시기”라며 ‘충청 대망론’에 공개적으로 불을 지폈다. ‘충청 대망론’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반기문 대망론’이다.
새누리당은 수도권에서 폭삭 망했지만 충청권에서 선전했다. 충청권에선 27석 중 절반이 넘는 14석을 차지했다. 뿐만 아니라 2013년부터 충청 인구가 호남보다 많아졌다. 지금까지 충청도는 독자적 결정권보다 캐스팅보트 역할에 머물렀지만 앞으로는 호남보다 더 큰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충남 홍성·예산 출신인 홍문표 새누리당 제1사무부총장이 지난 21일 라디오에 출연해 ‘반기문 대망론을 어떻게 보느냐’고 묻자 “반 총장이 국제 감각이라든지 아주 훌륭한 분이기 때문에 (차기 대선 주자와 관련해) 대상자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반 총장을 새누리당이 대권 후보로 영입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는 말이냐”는 물음에도 “그렇다”고 했다. 김무성 전 대표 때문에 공개적으로 거론하기 꺼렸던 반 총장 이름이 공개적으로 회자되고 있다.
반 총장은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레이스 ‘1위’다. 총선이 끝난 뒤 문재인 전 대표가 반 총장보다 앞선 조사가 나왔다고 하지만 단 한 차례 뿐이다. 그 차이도 박빙이다. 특히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은 20% 안팎에 묶여 있다. 확정성이 부족하다. 더구나 문 전 대표에겐 호남의 ‘파문’이 치명상이다. 그는 지금 총선 때 광주에서 “호남이 버리면 정계은퇴 뿐만 아니라 대권도전도 포기하겠다”고 한 약속에 발목이 잡혀 있다. 호남의 그에 대한 싸늘함은 내년 대선 때까지 풀린다는 보장도 없다. 따라서 새누리당 충청권 중심의 ‘반기문 대망론’은 위력적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고장 난 배(船)다. 선장도 조타수도 없이 바다를 헤매는 난파선이다. 그런 배에 반 총장이 올라탈 것으로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지려야 질 수 없는 선거를 망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된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모험이다. 새누리당이 반 총장을 진정 영입할 생각이 있다면 발바닥부터 머리끝까지 ‘확’ 뜯어 고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 총장 아니라 누구도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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