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ㅎㅎㅎㅎㅎㅎ’. 작가 전상국(全商國)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이기도 한 단편 ‘동행’의 마지막 문장에 나오는 주인공의 웃음소리 묘사다. 아마 모음이 배제된 의성어가 우리글 문장에 나타난 최초의 사례가 아닌가 싶어 기억을 더듬어본 작품 속 한 줄이다. ‘동행’은 196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니 54년 전의 일이다. 박종화 안수길 최정희 세 심사위원은 심사평에서 ‘꼬장꼬장한 문장’을 칭찬했다. 아마 ‘ㅎㅎ…’까지를 포함한 찬사였을 거다.
작가 자신은 뒷날 어느 방송에서 ‘ㅎㅎ…’를 ‘흐흐 허허 흐흐흐’로 소리 내 읽었다. 딱히 그의 독음(讀音)이 아니더라도 작품 속에 ‘그는 느닷없이 웃음을 흘렸다’라는 지문이 있어 웃음인 줄 알겠고, 또 그 웃음은 작중 분위기상 하하 호호 히히 따위 쾌활·호방한 웃음이 아니란 것도 눈치 챌 수 있다. 올무에 걸린 짐승소리처럼 그 웃음은 어딘가 고통스러운 그것인 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거다.
필요한 건지 모르겠지만 앞의 예를 차례대로 풀어 드리자면 ‘이거 레알(이거 진짜)’ ‘제곧내(제목이 곧 내용)’ ‘아재(아저씨의 사투리로, 나이 들어 한물 간 사람이란 뜻)’다. 여기에다 ‘낄끼빠빠’(낄 데선 끼이고 빠질 데선 빠진다), ‘사바사(사람 by 사람/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말도 있다. 얼마 전까지 사자성어나 고사성어를 익혀야 했듯이 오늘날 젊은이들과 소통하려면 이런 걸 애써 배우라는 게 사회학자들의 탄식어린 권고다. 최근 한 신문의 세태 기사 한 꼭지를 읽고 생각이 닿는 바가 있어 끼적여보는 ‘말 줄임 기호’ 풍조이거니와 분별없는 기형어의 유행을 나무라야 할지 먹어버린 나이를 한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요즘의 희한한 말 줄임 조어들은 한자 성어보다는 따라 배우기가 몇 배 더 어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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