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망하는 것을 바꾸면 행복의 기준도 바뀌는 것’
  • 경북도민일보
‘갈망하는 것을 바꾸면 행복의 기준도 바뀌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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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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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지수
▲ 이철우 작가

[경북도민일보] “가느다란 다리, 한점 소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의 몇 사람들이 야윈 당나귀 한 마리를 끌고 높은 산을 휘적 휘적 힘겹게 오른다. 그리고는 우물을 파듯이 10m가 넘게 땅을 파고서는 물을 길어 오르듯 떡돌을 캐내어 당나귀에 싣고 마을로 내려 간다. 그 떡돌에 물을 부어, 불려지고 풀어 지길 기다렸다가 소금 한줌 넣고서 휘~ 휘 젖는다. 고운 반죽이 된다. 그 반죽을 한 웅큼씩 떠다가 얇게 펴서 햇볕에 말린다. 적당이 건조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한입씩 베어 먹는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한입씩 베어 먹는다. 어린아이들은 진흙을 너무 많이 먹어 장에서 배출이 되지 않아 배가 불룩하게 나온 채 죽어 가고 있다”
아프리카의 어느 극빈국에서 곡물가격이 올라 밀을 수입할 수 없게 되고 원조마저 끊기게 되어 먹을 것이 없어서 진흙으로 쿠키를 만들어 먹는 모습의 한 장면입니다. 그 당시에 지구 저 건너편 유럽에서는 에탄올 이라는 연료의 시험 생산을 위해 밀을 수만 톤이나 썩혀서 발효 시키는 장면이 다큐멘터리에서 대조적으로 비춰지고 있었습니다. 지구의 어느 한켠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진흙을 먹으며 죽어 가고 있고, 또 한켠에서는 수많은 생명을 구 할 수 있는 곡물을 연구용 사료로 사용하기 위해 썩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굶주림에 죽어 가는 아프리카 흑인들의 움푹 꺼진 눈동자에서 한없는 절망을 보았습니다. 그럼 물질적으로 풍족한 삶을 누리는 선진국들과 더불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요?  사람들은 한결같이 미래가 불안하다고 합니다. 여러번의 경제위기를 연거푸 겪으면서 불안감은 더욱 심화된 듯합니다. 두려움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무서워하는 것이지만 불안은 대상이 없으면서 마음이 편치 아니하고 조마조마한 감정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두려울 때는 대상 앞에서 피하거나 극복하려 하지만, 불안할 때는 무기력감밖에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무기력감” 속에서 우울증이 잉태되어 우리나라는 하루에 33명이 자살하는 자살대국이 되었습니다.
불안으로 인해 사람들은 욕망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현재의 사회적 위치 보다 더 떨어지지 않기 위해 대상이 없고 상대가 보이지 않는 불안속에서 더욱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 합니다. 젊은이들은 사회의 통념상, 묵시적으로 제시된 성공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 적성과 재능을 무시하고 오직 살아남기 위해 무한의 경쟁 속에서 자격증, 봉사활동, 인턴십, 토익 점수, 해외 연수는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고, 그럼에도 취업이 어려워 족집게 강사가 있는 학원은 북새통을 이룬다고 합니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고, 잘살아 보려고 노력하려 해도 노력의 기회가 제공되지 않은 현실 속에서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자괴감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각 국가마다 경제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고, 지도자는 경제성장의 정도에 따라 그 능력과 업적을 평가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모든 언론매체와 사람들은 저마다 살기 어렵다며 경기 활성화와 경제 성장을 바라고 있고, 정치 지도자들도 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끝없는 탐욕이 능력이 되어 버린 이 고삐 풀린 자본주의는 경제가 성장 할수록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을 심화시켜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자연은 병들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으며, 막연한 불안과 치열한 경쟁속에 사람들은 행복을 잃어 버렸습니다. 이제 일부 학자들은 자본주의 숱한 병폐와 모순점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자유무역의 이념적 변형을 찾아내야 한다” 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사람이 행복해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더 많이 소유하거나, 욕망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갈망하는 것을 바꾸면 행복의 기준도 바뀌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도 똑같은 풍경을 보고 듣습니다.
새싹 같은 어린 아들딸들이 온종일 학교와 학원을 오가다가 해가 진 저물은 오후, 지친 어깨에 무거운 가방을 메고 터벅 터벅 걸어가는 얼굴과 눈빛에서 중년에서나 봄직한 인생의 고단함과 번민을 봅니다.
잘살아 보겠다고 꽃 같은 처자식 눈물로 남겨두고, 이국만리 머나먼 타국에서… 추위에 떨며 입맛에도 맞지 않은 맵고 짜고 뜨거운 점심을 먹기 위해 식판을 들고 길게 줄을 늘어선 외국인 건설 노동자의 망향의 눈동자에서… 고단함과 불안과 사무치는 그리움을 봅니다.
오래전, 추운 겨울밤에 서울의 거리에서 들었던… “찹쌀떡 사리요”란 소리가 동녘의 작은 이 도시에서 경칩이 지나 봄의 길목에 이르도록 모두가 잠든 늦은 밤까지 풀 한포기 자라지 못하는 검은 아스팔트의 거리 거리에, 절규처럼 구슬피 들려 옵니다

모두가 살아 가기 어렵다고만 합니다. 이처럼 경제가 어려워진 까닭은 미리 예측하지 못하였고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시스템적으로만 해결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보완책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미국의 금융위기 여파로 국민소득이 떨어져 견디기 어렵다고 아우성입니다. 그렇다면, 국민소득이 3만불이 되고, 5만불이 되고, 10만불이 되면 모두가 행복할까요…! 하늘까지 닿도록 경제의 바벨탑을 쌓아 올리면 모두가 행복할까요.
얼마나 더 알아야 하고, 얼마나 더 가져야 하며, 어디까지 발전해야 되고, 얼마나 더 배워야 하며, 기나 긴 경쟁은 언제까지 더 지속되어야 되고, 얼마나 더 빨리 가야되며, 얼마나 더 복잡한 제도와 사회적 시스템이 갖추어 져야 사람들은 행복하고 만족할까요…! 신이 만든 세상이기에… 우리의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망자가 입는 수의에는 호주머니가 없다” 하였습니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오늘날 낭만이나 추억을 만들어 갈 틈도 없이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이 메마른 현실이 이토록 살기 어려운 것은, 냉철한 이성과 빈틈없는 합리를 가진 숱한 논리와 제도가 빈약해서도, 경제가 더 발전하지 못해서도 아니라, 진리가 죽었고 사랑이 실종되었으며  움켜 쥔 손을 펴지 못하는 까닭 때문이 아닐까요.!
내 이웃을 사랑하고 온 세상을 사랑하는 사랑이 아니라, 내 가족만 사랑하고 내 연인만 사랑하는 편협한 사랑만 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삶의 원형을 잃어 버리고, 절대자와 절대가치를 상실한 이 시대는 모든 것에 있어서 주고 받는 대칭의 가치만 존재하는 나눔과 베품이 없는 세상이 되어 버린 때문이 아닐까요…!
얼마 전,  UN에서 국민행복지수를 조사한 통계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행복지수 1위인 나라는 이름도 처음 들어 본 오세아니아 군도의 작은 섬 “바누아투”라는 나라였고, 의외로 문화가 발달하고 국민 복지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 경제적으로 부강한 선진국들은 행복지수 순위에서 대부분 하위권에 머물렀습니다. 이탈리아가 66위, 독일81위, 일본 95위, 영국108위, 캐나다 111위, 프랑스 129위, 미국이 150위 였습니다. 우리나라는 102위였습니다. 행복지수에 대한 평가는 기대수명, 삶에 대한 만족도, 공동체에 대한 참여수준 등을 평가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이 조사는 바로 삶의 질이 경제적 소비수준과 얼마나 관계가 있는가를 규명하고자 한 것인데 예상외로 경제적 부와 소비수준이 아주 낮은 나라들이 대부분 상위권을 차지하였습니다. 오늘날 세계 모든 국가들이 경제 성장을 최고의 기치로 내 걸고 무한경쟁을 펼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현재 얼어붙은 경제로 인해 하루 하루가 힘겹다고들 합니다. 그럼 GNP가 높은 선진국 국민들이 행복한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구촌에서 가장 부강한 미국에 세계최대의 빈민촌이 있고 행복지수가 하위권인 것을 보면, 국민소득과 소비 수준의 높은 것이 결코 삶의 만족도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반증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물질의 풍요가 완전한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것을… 타락한 자본주의는 끝없는 불안속으로 삶을 내몰 것이며 그 틀속에서 인간의 감성은 메말라 가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욱 이해 타산적으로만 맺어지게 되어 저마다 홀로이 유리되어 고독하게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과학적, 경제적으로 미숙한 조그만 나라들이 행복지수 상위권을 차지하게 된 것과 바누아투라는 이름도 처음 들어본 나라의 행복지수가 1위인 이유가 무엇인지를 찾아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웃을 형제로 여길 만큼 서로 간에 두터운 신뢰와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협력, 협동으로 타인과 서로 공존하고, 폐를 끼치지 않으며 작은 것도 서로 나누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 가는 그들의 생활 방식과 의식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구현한 행복은 더 많이 가짐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나눔으로 채워지며, 행복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이고 또한 행복은 비교대상이나 상대성이 아니라는 것을 삶으로 가르쳐 주었습니다.
오늘도 몸살 같은 하루를 살아내고서 지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그 나라를 꿈꿔 봅니다. 공해로 인하여 뿌우연 대기 속에 별들이 죽어버린 밤 하늘, 치열한 경쟁 속에 도태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 쳐야 하는 생활, 둘러 봐도 보이는 건 숨 막힐 듯 검은 아스팔트 바닥, 거대한 콘크리트의 숲, 과학의 맹신과 편리성속에 결국엔 공허함뿐인 향락적인 문화에 길들여진 삶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나누고, 서로 아껴주면서, 그저 있는데로 받고 감사하며 자연과 하나 되어 밤이면 웃고 노래하다 별을 헤이며 잠드는 행복한 삶의 원형이 역동하는 나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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