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를 몰고 온 제11호 태풍 `나리’가 지나가니 인재(人災) 논란이 또 불거지고 있다. 인재는 글자 그대로 사람의 잘못이 불러들인 재앙이다. 혈세를 쏟아부어 갖가지 명목으로 사업을 벌였지만 그것이 뒤탈을 일으킬 때면 으레 등장하는 말썽거리다. 건성 건성, 대충 대충 일을 해치워 겉치레에만 치중하다 보니 말썽거리를 묻어버린 채 마침표를 찍어 생기는 일이다.
이렇게 되면 마침표는 또다른 일거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에 지나지 않게 마련이다. 이번 사태가 그 실증이다.
태풍 나리는 경북도내 곳곳에 큰 피해를 남겼다.주택, 상가, 도로, 농경지, 농산물 이런 것들이 모두 피해 대상이다. 잠정 집계는 됐으나 그 피해 규모는 더욱 늘어나는 게 상례이다시피 하다.
이 가운데서도 포항은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 침수된 105채 가운데 101채가 포항 주택들이란 사실 한가지만으로도 모든 게 설명된다. 이번에 가장 비가 많이 내린 곳은 오천읍이다. 343㎜가 내렸지만 시내 지역은 시간당 50㎜ 정도였다. 그런데도 이 비에 포항은 물에 잠긴 도시가 되고 말았다.
905억 원이나 들여 최첨단 시설을 갖춘 포항시 신청사엔 양동이까지 등장했다. 최첨단 건물이 양동이로 빗물을 받다니 이런 코미디도 있을 수 있구나 싶을 지경이다. 앞으로도 50㎜ 비는 얼마든지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양동이가 나타나야 하는 것인가.
더욱 분통 터지게 하는 것은 상습 침수지역이 또 똑같은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이다. 그 원인은 또 배수 펌프장이다. 이 배수 펌프장이 제 구실을 못해 창포동, 죽도동 일대가 올해에도 `상습침수지역’이란 불명예를 벗어던지지 못했다.
한 주민은 “침수 개선사업을 하기에 이번엔 마음을 놓고 있었다”고 했다. 시민의 믿음을 단 한번에 깨뜨려 버린 꼴이다. 왜 그렇게 됐을까. 한 관계자는 “우회 배수로 공사가 끝나지 않아 그렇게 됐다”고 했다. 책임감 없고 성실하지도 않은 시당국의 자세가 이 한마디에서 드러나는 느낌이다. 예산타령, 일손타령을 늘어놓지 않은 것만도 그나마 다행일까.
재난 뒤에는 복구와 보상이 뒤따른다. 이를 위한 예산도 해마다 책정되고 있으니 순조롭게 마무리 되길 기대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인재의 재발방지다. 해마다 겪는 자연재해인데 아직도 `상습’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 이로 말미암은 인력낭비, 시간낭비, 예산낭비가 도대체 얼마인가.
경북 제1의 도시라는 포항의 태풍 피해는 부끄러운 일이다. 그것도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올해엔 태풍 피해는 더 없을 것같다는 게 기상 당국의 분석이긴 하다. 그렇다고 마음놓을 수 만은 없다. 우리의 희망사항에 그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친 자리 또 다치는 불행만은 막아주는 게 당국의 기본 임무임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를 잊어버리거나 가볍게 여기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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