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루트비히 판 베토벤
-봄의 감성, 봄 소나타
몇 주 전 제주도 성산일출봉 근처 유채꽃 재배단지에서 유채꽃이 만발하여 관광객들을 불러 모았다는 TV뉴스를 보았다. 유채꽃은 2월에 제주도부터 피기 시작해 봄소식을 알린다고 알고 있었는데 올해 겨울은 예년과는 달리 따뜻한 겨울이어서 제주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남녘 전역에 몇 주 빠른 꽃소식이 연일 뉴스로 전해지고 있다. 입춘은 지났지만 아직까지 조금 남아 있는 겨울 찬 기운은 우리에게 아쉬움을 주지만, 빨리 찾아온 봄을 서둘러 준비해야하는 우리는 아직 어설프지만 눈앞의 봄을 즐길 준비가 되어있다.
봄을 의미하는 단어는 많다. 이를테면 시작, 식욕, 춘곤증, 낮잠, 입춘대길, 봄처녀, 개나리 등의 여러 가지의 꽃 이름을 생각만하면 쏟아져 나오는 봄에 관련된 단어가 아주 많다. 그중에서도 필자는 봄은 밝은 미래의 희망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은 희망을 전제로 겨울 내내 춥고 어두웠던 인생역경의 승리를 간직한 작품, 봄날같이 밝고 따뜻한 희망의 감성을 잘 표현한 베토벤과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5번을 소개한다. 베토벤은 바이올린소나타를 총 10개의 소나타를 작곡했는데 그 중에서도 5번 ‘봄’과 9번 ‘크로이처’가 가장 유명하다.
-인생역경을 극복하고 탄생한 바이올린 소나타
베토벤은 대자연으로부터 많은 음악적인 영감을 받았다. 특히 숲에서의 영감은 그에게 많은 음악적인 소재를 안겨주었다. 흔히들 베토벤하면 숲속에서 사색하는 모습이 떠오르는 음악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베토벤은 매우 감성적일 것이다. 사색을 많이 하니 성품이 온화하고 매우 지적인 사람일 것이라고 으레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내면적인 심리상태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의 인생사는 그리 평범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토벤은 유년기시절 무척 영리하고 음악 학습이 매우 빨랐던 천재성을 가진 아이었다. 한때 궁정합창단의 테너 가수였던 그의 아버지는 모차르트를 롤 모델 삼아 베토벤에게 혹독한 음악교육을 하였다. 그 이유는 저작거리 술주정뱅이에 불과했던 그가 어린 자식을 이용해 돈벌 궁리만 했던 욕망으로 가득한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추측컨대, 온갖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로 유년기를 보낸 베토벤은 삐뚤어진 정서를 갖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베토벤이 한때 극단적인 생각을 하고 쓴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의 내용을 보면 그의 어린 시절 아버지의 욕망으로 인해 그가 얼마나 고통 받고 사회적으로 적응하지 못한 채로 평생을 살아야만했는지 잘 알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베토벤은 25세 때부터 청력이 나빠져 30세에 거의 청력을 잃어버리는 청청벽력과 같은 음악인들에게는 사형선거와도 같은 병에 걸렸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시절 사색하는 베토벤의 그림을 종종 음악교과서에서 보았을 것이다. 바로 이런 그림들은 그가 귓병을 치유를 위해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휴양하며 작곡을 구상한 상상도이다.
베토벤의 작품은 30세 전후에 폭발적으로 만들어지게 되는데 그의 작곡활동의 전성기로 작품의 완성도는 귀가 들리기 전보다 듣지 못하는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그의 첫 번째 교향곡도 30세 이후에 만들어졌고 우리가 잘 아는 3번 전원 교향곡, 5번 운명 교향곡도 청력을 거의 상실했을 때 작곡을 한 명작 중의 명작인 것이다. 그래서 후대의 사람들은 베토벤을 가리켜 ‘인간 승리의 표본’이라는 말을 쓴다. ‘봄 소나타’ 역시 그 당시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이다. 한때 그의 귓병으로 자살을 결심했던 그가 역경을 이기고 만들어낸 작품이라 더욱 감상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봄’이라 이름 붙여진 바이올린 소나타
곡 초반의 멜로디는 너무나도 유명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처럼 우리 귀에 익숙하다. 이 작품은 ‘비발디’의 ‘사계’ 중 ‘봄’과 같이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활짝 펴고 봄의 따스함과 편안함 그리고 즐거움이 가득하다. 이전의 베토벤의 음악은 고전주의 형식에 얽매여 모차르트 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한 음악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고전의 형틀에 꽉 맞춰져 음악의 감성은 항상 무거운 스타일 이였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어둡고 무거운 느낌은 온데간데없고 봄을 연상하게 만드는 멜로디로 밝고 생동감 그자체인 이례적인 몇 안 되는 그의 특이한 작품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베토벤이라는 사람은 외골수에 타협이 없어 소통이 전혀 안 되는 늘 혼자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눈빛을 상상해보며 이 작품을 한번 감상해보자. ‘봄 소나타’는 마치 그의 속내 깊은 곳에 숨겨있는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베토벤만의 감성을 잘 느끼게 하고 있다. 분명 베토벤의 외모에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이 작품으로 알 수 있듯 그의 내면은 항상 따뜻한 인간 베토벤이었던 것이다. 필자는 그의 봄 소나타가 자신의 삶이 보통사람들처럼 평온하게 되기를 갈망했고 그러한 그 자신만의 사랑과 희망을 늘 꿈꿔왔던 한 인간 베토벤의 내면을 표현한 것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해본다.
1악장의 첫 번째 주제는 매우 맑고 따뜻한 멜로디이다. 정말로 베토벤이 이런 음악을 작곡했을까? 라고 의심할정도로 베토벤과 어울리지 않는 멜로디이다. 이 멜로디는 연인들이 서로 사랑의 속삭임을 이야기하는 달콤한 선율이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서로 달콤함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연주가 되며 음악이 전개된다. 이내 봄 냄새가 물씬 나는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그래서 이 바이올린 소나타를 ‘봄 소나타’라고 사람들은 명명하게 되었다.
2악장은 느리게 연주되는데 피아노가 먼저 연주되고 바이올린은 마치 화답을 하듯 아름다운 2중주가 연주된다. 그렇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주고받는 대화에를 상상하면서 2악장을 감상한다면 예전에 좋았던 일, 사랑에 빠졌던 행복했던 과거가 연상될 것이다. 잘 감상해보면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멜로디가 아련한 추억의 시절로 잠시 보내 줄 것이다.
3악장은 빠른 박자의 스케르초(scherzo: 해학적으로 경쾌하게)이다. 피아노가 경쾌한 8마디를 연주하고 연이어 바이올린이 연주된다. 마치 아이들이 장난을 치듯이 바이올린이 가볍고 익살스러운 분위기의 연주가 이어진다. ‘스케르초’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이들이 봄과 함께 장난을 치는 아주 익살이 가득한 악장이다.
짧은 3악장의 장난스러운 스케르초가 끝나고 이어지는 4악장은 론도(Rondo: 같은 주제를 여러 번 반복)이다. 처음 나오는 바이올린 주선율을 잘 들어보자. 무려 4차례가 반복된다. 단조로 변환된 2번째 주제와 당김음을 사용한 3번째 주제도 있지만 첫주제의 반복이 봄의 강한 생명력을 표현한다. 마지막은 셋잇단음표 연속으로 마무리되는데 마지막 봄의 절정을 만끽할 수 있다.
베토벤의 ‘봄 소나타’를 감상해보면, 시인 김춘수의 시 ‘꽃’에 나오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시구가 떠오른다. 본래 바이올린 소나타 제5번이라는 이름 없는 곡으로 탄생되었지만, 듣고 즐기는 이들로 하여금 후대에 ‘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봄’이라는 이름을 붙이자 비로소 ‘제5번 소나타’는 음악에 내재된 봄과 같은 생명력이 더욱더 빛이 나면서 세기의 명곡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클래식 음악 감상이란 단순히 수동적으로 소리를 듣는 피동적인 경험이 아니라, 감상하는 이가 곡마다 자신만의 이름을 붙일 수도 있는 능동적 활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일영 포항유스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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