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과 포항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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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과 포항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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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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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지방 도시들이 인구감소와 쇠락을 걱정하는 처지가 되다 보니, 지역을 단번에 살려줄 ‘게임체인저’와 같은 프로젝트에 더욱더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무슨 공항이나 의과대학 하나 정도를 유치할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빼줄 기세로 덤벼들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큰 프로젝트 하나가 기대처럼 게임체인저가 되어준 경우는 사실 별로 없다. 큰 기대로 만들고도 지금은 놀고 있는 공항, 대학, 경기장이 한두 개가 아닌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런 와중에, 사실 청계천만큼 게임체인저에 가까웠던 프로젝트도 드물 것 같다. 물론, 이쯤에서 얼굴을 찌푸릴 분들도 계시리라. 하지만 정치적 호불호는 제쳐두고 프로젝트가 가져온 효과만 순수하게 바라보자면 이만한 영향을 끼친 것이 근래에 있었을까? 1년에 100억 가까운 유지비가 들어가는 사업임을 아느냐고 여전히 비판하는 분들도 있겠다. 하지만, 발길 드문 공항이며, 철 지난 월드컵경기장들이 해마다 내는 적자가 얼마인가를 안다면 그런 말은 쉽게 하기 어려울 것이다.

청계천은 쇠락해가던 서울 도심부를 살리는 데 성공했다. 음습하던 청계천로를 밟은 웃음이 넘치는 곳으로 바꾸었고, 나아가 외국인도 한번 들리는 명소로 만들었다. 강남에 밀려 종갓집 체면을 구기던 종로가 다시 살아나는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이후 청계천식 프로젝트는 각 지역으로 유행처럼 번져갔다. 그리고 포항에서는 포항운하 복원사업으로 나타났다.

그럼 과연 포항운하는 게임체인저가 되어주었을까? 굳이 실패라고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좋은 날씨에 가 보아도 채 다섯 명을 찾아보기 어려운 장소가 되어버렸다. 수천억의 비용이 들어간, 일대의 프로젝트가 5년 만에 이처럼 잊히고 있는 것일까? 이쯤에서 지방 도시의 프로젝트를 실패로 이끄는 두 가지 구조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첫째는 지역이 가지는 ‘활력의 한계’를 너무 쉽게 무시하는 습관이다. 활력이란 시설이 아니라 결국은 ‘사람의 흐름’이다. 무얼 만들건 간에 사람들이 찾아와서 시간과 비용을 소모할 때 비로소 활력이 생긴다. 하지만 사람의 숫자나 그들의 쓰는 시간, 비용은 모두 양이 정해져 있다. 한 지역에서의 ‘인구×시간×소비’의 값이 한없이 늘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 성공한 시설을 모방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활력은 그렇게 쉽게 모방 되지 않는다. 활력의 한계에 대한 인식도, 이를 극복할 전략도 없는 모방이 성공하기는 어렵다.

둘째는 지방 도시의 프로젝트에서 으레 발생하는 ‘부동산 장벽’이다. 어떤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주변의 부동산 가격은 올라가기 마련이다. 문제는, 지방 도시의 경우에는 올라간 부동산 가격이 주변의 변화를 아예 막아버리곤 한다는 것이다. 포항운하의 경우도 그러하다. 긍정적 영향이 채 나타나기도 전에 부동산 가격부터 올라가 버린다.

그러다 보니 포항운하와 어울려야 할 창조적인 변화들이 나타나지 못하게 된다. 올라간 임대료 때문에 사람들을 끌 만한 상업, 위락기능이나 편의시설이 주변에 제대로 못 들어선다는 것이다. 이것이 부동산 장벽의 의미이다.

물론 이런 현상이 청계천이라고 없었을 리는 없다. 하지만 청계천 주변에는 조금의 틈만 내주어도 솟구칠 수 있는 서울의 활력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새로이 발생한 활력이 능히 부동산 장벽을 뛰어넘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자연히 청계천 주변은 높은 임대료를 감수하고라도 사업을 펼칠만한 매력적인 장소가 된 것이다.

결국, 포항운하의 부진함도 새로 생긴 활력에 비해 턱없이 높은 부동산 장벽 때문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한때 게임체인저로 주목받던 프로젝트는 결국 그렇게 잊히고, 지자체는 ‘이 산이 아닌가 보다’를 되뇌며 다시금 새로운 게임체인저를 찾아 그렇게 헤매곤 한다. 이것이 내가 보는 우리나라 지방 도시들의 공통적인 문제점들이다.

그러면 지방 도시들이 활력의 한계, 부동산 장벽을 돌파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한방에 전세를 바꿔 줄 게임체인저에 대한 믿음은 버리고, 보다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마인드를 가진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변화에 대한 예측도 없이 그저 기반시설을 가져다 놓는 것만으로 끝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미국의 월트디즈니사가 한창 성장하고 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계획하는 프로젝트 부지의 주변 지역부터 먼저 매입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자신들이 가져올 변화와 그로 인한 기회가 어떤 것인지 알았고, 그에 미리 전략적으로 대응했다는 것이다. 그저 민간기업의 일로 치부할 것이 아니다. 오늘날 지방정부야말로 재생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 이런 정도의 예측과 전략이 있어야 할 게 아닐까.

재생의 시대, 지방 도시에 있어서 한방으로 끝내는 게임체인저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임체인저를 꿈꾸지 말고, 게임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전략적 마인드가 지방정부에게 필요한 시기이다.

김주일 한동대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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