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가장 논란이 되었던 순위표는 미국 언론사 US뉴스가 매년 발표하는 미국 192개 로스쿨 순위다. 항상 1위를 차지하는 예일대 로스쿨이 가장 먼저 나서서 순위표 작성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하버드를 포함한 상위권 로스쿨들이 바로 동참했다.
US뉴스는 영리 미디어기업이다. 돈이 되기 때문에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조사해서 순위표를 작성하고 공개한다. 로스쿨 입학을 준비하는 학생들과 졸업생들을 채용하는 로펌들이 그 정보를 가장 필요로 한다. 학생, 동문, 교수들에게는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개’ 영리기업인 US뉴스의 이 사업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효과를 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가 이를 금지할 수는 없다. 해당 정보를 찾는 사람들은 불만이 없지 않아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찾는다. 사회적으로 좋은지 아닌지는 또 누가 판단할 수 있나. 전 미국이 떠들썩했다.
예일대 로스쿨 거킨 학장이 발표한 입장문의 골자는 이렇다. US뉴스의 랭킹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학생들의 공익 관련 진로 선택과 소득과 연계된 장학금 수혜를 어렵게 하고 차상위 가정 출신 학생들이 법조인이 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랭킹이 법률가 커뮤니티의 핵심 가치를 훼손한다는 결론이 나왔고 따라서 그 프로세스에 협조하지 않기로 했다.
많은 로스쿨은 졸업생들이 다음 단계의 학위과정에 진학하거나 공익활동에 해당하는 직업을 선택할 경우 장학금을 지원하는데 이 학생들은 US뉴스가 ‘미취업’ 카테고리로 분류해 해당 학교의 취업률을 떨어뜨린다. 졸업생이 공직에 진출하면 학자금 대출을 감면해 주는 것도 반영하지 않고 높은 학비 부담으로 분류한다. US뉴스는 로스쿨 평가에 약 20% 비중으로 대학교 성적과 LSAT/GRE 점수를 반영하는데 이 또한 재능있는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공정하지 못하다. 로스쿨들이 정량적 기준을 기반으로 학생들을 선발하면서 장학금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형평성이라는 가치의 실현을 방해하는 처사다. (가장 돈이 많은) 하버드와 예일 두 학교만이 여기서 자유롭다. 성적에 무관하게 장학생으로 들어와 우수하게 졸업하는 학생들은 학우들에게 큰 영감을 준다.
종래 이 랭킹의 영향력이 막강했기 때문에 미국 로스쿨들은 이른바 을의 입장에서 다양한 전략을 구사했다. 예컨대 학생들을 위해 지출하는 돈이 많을수록 높이 평가받으므로 등록금을 올리고 그 돈으로 장학금을 더 많이 주는 식의 편법도 등장했다. LSAT 점수가 높은 학생들은 어차피 다른 학교에 갈 것으로 분류해서 의도적으로 탈락시키고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분장하기도 했다.
이번에 이른바 ‘톱 14’에 해당하는 로스쿨 중 시카고와 코넬을 제외한 12개 로스쿨이 US뉴스에 자료협조를 거부했다. US뉴스는 할 수 없이 자체 노력으로 작업을 진행해 5월 초에 평년보다 많이 늦게 순위를 발표했다. 1위 예일과 14대 로스쿨은 대체로 유지되었는데 세부적인 순위에는 상당한 변동이 생겼다.
인간은 생존 본능 때문에 항상 서로를 비교한다. 생존하려면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서로 상대의 위치를 알면 편리하다. 랭킹은 ‘사회적 게임’이라는 말도 있다. 소속되어 있는 사회 전체의 역학관계는 순위표를 만들어서 파악할 수 있다. 높은 순위, 특히 1등이라는 사실은 그 자체 가치와 에너지도 창출한다. 기업들이 가장 잘 안다.
그러나 지난 20년 이상 진행되어 온 US뉴스의 랭킹 작업에 미국 로스쿨들이 드디어 다르게 반응하기 시작한 것은 인간의 가치체계 변동의 시작을 암시하는 듯하다. US뉴스 랭킹은 미국 사회의 핵심 가치인 다양성도 반영하지 않는다. 미국의 거의 모든 대학이 ESG의 실천을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의외다. 우리 대학들도 THE나 QS 같은 세계 대학 랭킹에 적지 않은 신경을 쓴다. 자체 고유의 가치관을 보편적 가치체계에 정합하게 정비하고 합당한 평가를 기대해야 하겠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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