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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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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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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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란 잘못을 인정하는데 가장 더딘 기관- 
 
  박 효 종/서울대 교수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가. 정말로 잘 달리는 말은 평지를 달릴 때가 아니라 언덕을 오를 때 알아본다고…. 이 사실을 지금처럼 실감하는 때도 없다. 영혼이 있는 민주정부라면 평소 인기가 있고 잘 나갈 때가 아니라 참담한 패배 이후 자신을 추스르는 모습에서 알아볼 수 있으니깐 말이다.
 지금 참여정부는 어떤가. 민심이 성난 파도처럼 한바탕 소용돌이치면서 지나갔는데 정부는 요지부동, 꿈쩍도 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물론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고 행동일 터이다. 그래도 말은 진심의 단초가 아닐까. 참여정부의 어떤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이 환자를 수술하는 데 마취약을 쓰지 않고 수술을 하는 의사처럼 행동했기에 인심을 잃었다고 했다. 또 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이런 결과가 나왔으며, 개혁을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 모두 용감한 말들이지만, 한편 소갈머리가 없는 룞콩깍지룞와 같은 말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이런 말을들을 때마다 “정부란 이 세상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 가장 더딘 기관”이라고 갈파한 밀턴 프리드먼이 생각난다. 또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소피스트의 모습도 떠오른다.
 `개혁’이란 말은 정녕 이 정권 사람들에게 반드시 긁어야만 하는 `가려움증’과 같은 것인가. 아니면 사람을 취하게 하는 주술적인 어떤 것인가. 정부 관계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 가운데 나오는 `흔들리지 말자’를 합창이나 하듯 우렁차게 외치는 걸 보면, `집단적 사고’의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한솥밥을 먹고 항상 같은 테이블에서 국정을 의논하다 보니, 생각도 닮게 되는 것인가. 아니면 코드인사로 인해 처음부터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어울려서인가. 그게 아니라면, 권력의 오만함에서 나오는 소치일까.
 부동산 세금이 과중하고 먹고 살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강남이나 수도권의 잘나가는 사람들의 자기중심적 하소연이 아니다. 서민층과 중산층의 많은 국민들이 세금을 한꺼번에 두세 배나 올리는 부동산 정책을 `선진형개혁’이라기 보다는 `가렴주구(苛斂誅求)형 개혁’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역사에 남을 만큼 중요한 개혁이기 때문에 조금도 고쳐서는 안된다고 고집부리는 정부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정책의 신뢰를 위해선 일관성이 중요하다는 등 논리가 정연한 것을 보면, 국민들을 일부러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혹시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폭탄식 증세방식에 의해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고 `버블’을 가라앉혀야 한다는 이 정부의 해법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것은 현실에 입각한 실사구시의 아이디어가아니라 `권력에 깃든 오만한 사고’, 즉 있는 사람을 크게 한번 혼내주어야 하겠다는 발상이 작용한 것일까. 사람들이 살기가 힘들다고 선거에서 유례없는 몰표를 던졌으면, 바로 그것이 태양과 같은 진리이며 또 천심과 같은 것이다. 태양을 보기 위해 돋보기를 쓰거나 촛불을 켜는 사람이 있는가.
 민심의 향배가 백일하에 들어났는데, “저항없는 개혁은 없다”는 구차한 논리가 새삼 필요한 까닭이 무엇인가. 개혁은 참여정부에 있어 최고의 신과 같았다. 그러나 이 신은 패하는 일이 없는 불패의 신이 아니라 상하기 쉬운 갈대와 같은 신임을 이번 선거는 명백히 보여주었다. 신에게도 황혼이 있는 것처럼, 개혁에도 황혼이 있는 법이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짙어져 갈 때에야 날기 시작한다. 황혼녘에 나는 것은 반성할 마음이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 이 정권의 올빼미는 날아갈 낌새가 보이지 않으니, 언제 날아갈 것인가. 날아갈 준비가 돼있지 않다면, 아직 황혼이 오지 않았기 때문인가.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경기부양과 부동산정책을 둘러싸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현실적인 반면 정부는 원칙적이다. 원칙적이라기 보다 고식적이다. 그러나 여당의 주장은 민심을 반영한 것이다. 혹독한 여론의 심판을 받고나서야 민심의 현주소를 파악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쪽 주장이 옳을까. 미련한 질문이다. (www.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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