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이 일단 멈추고 난 뒤의 삶은 어린아이가 봐도 참 가난했다. 가뜩이나 가진 게 없는 나라에서 남침(南侵)까지 당했고 보니 모든 게 부서져 제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곤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삶의 곳곳에 가난이 흐르는 모습을 감추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 무렵은 양초가 집집마다 상비품이었다. 걸핏하면 꺼지는 백열등 대신 방안을 밝힐 조명용이었다.
이렇고 보니 전기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도전(盜電)이 분명한 짓거리들이 성행했다. 전신주에 연결된 전선의 한 부분의 피복을 벗겨내고 전기를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짓이었다. 이를 `쁘랏지’라고 했다. 이 말이 한국식 엉터리 영어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한참뒤 중학교에 진학하고 나서였다.
요즘 촛불은 장식용으로 많이 쓰인다. 요즘 같은 세태에선 `시위용’으로 대량 소비될 만큼 촛불의 쓸모가 확 달라져버렸다. 전기 또한 마찬가지다. 전신주에 불법 전선을 연결해 전기를 훔쳐쓰는 가정은 보기 힘들다. 그만큼 삶의 질이 나아졌다는 이야기도 되겠다.
개인의 삶이 이 만큼 나아졌으면 그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전국을 통틀어 104개나 되는 공공기관들이 전기 도둑질을 하다가 덜미를 잡혀 위약금을 추징당했다. 교육기관까지도 그 명단에 들어있다. 그 금액이 통틀어 3억719만원이다.2005년 1월부터 지난 8월까지다. 대구·경북 또한 예외지역이 아니다. 대구시, 김천시, 영주시, 칠곡군이 전기를 훔쳐쓴 지자체들이다.
한전으로부터 관련자료를 넘겨받은 한나라당 김기현의원은 “전기료를 비롯한 공공요금 지원 예산을 삭감하는 응분의 불이익 처분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들이 전기료까지도 뒷받침해주는데 무엇이 아쉬워서 도둑질을 해야 했는지 궁금해진다.
김용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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