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산불이 났던 현장의 까맣게 그을린 수목을 베어눕히고 절단 처리하는 등 산불뒤치다꺼리에 연일 `노가다수준’의 막노동을 벌여 온 것.
산불뒷수쇄의 진두지휘자는 당연히 박승호 시장이다. 직원들을 좨쳐 업무를 추진하는 박시장 스타일을 두고 공무원들은 평소 `탱크’라 하는데, 그 스타일은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돼 비가 내린 지난 13일에도 박시장과 공무원들은 불에 탄 수목을 정리했다.
비 젖은 옷에 뻘흙이 범벅이 된 채 작업에 지쳐 파김치가 된 공무원들의 행색은 영락없는 막노동꾼들이었다.
지켜보던 시민들이 “응당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이지만 불쌍하다”고 동정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작업은 계속됐으니 일러 `링거투혼’이라 할만하다.
이 일을 새삼 상기하는 건 공무원들의 고달픈 현실에 대한 값싼 동정도 위로도 아니다. 다만 작업에 녹초가 돼서도 할 일을 찾아 또다시 움직이는 포항시 공무원들의 모습에서 국민으로부터 상전대접을 받으려 했던 옛 관존민비 사상의 흔적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는 데에 문득 기자의 생각이 미쳤을 뿐이다.
오늘날 공무원이 선망의 대상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장에 투입된 포항시 공무원들은 교만하지 않았다. 행정을 권력현상으로 파악하고 스스로를 그 집행관으로 여기는 가당찮은 낯빛은 더더구나 없었다.
이번 산불은 뼈아픈 기억으로 남겠지만, 포항시 공무원들로서는 몸살로 링거를 꽂기까지 하는 공복의 투혼을 발휘함으로써 얻은 것도 적지 않아 보인다. 주민 위에 군림하는 책상머리 상전이 아니라 `큰일이 터지면 일꾼은 역시 공무원뿐’이라는 긍정적 평가가 그것이다. 주민은 공복들의 이런 변화를 지켜보면서 그들에 대한 불신을 한켜씩 걷어내가고 있다. /최일권기자 cig@h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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