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과 내용이 끝없이 전복되는 미지의 항로
  • 손경호기자
형식과 내용이 끝없이 전복되는 미지의 항로
  • 손경호기자
  • 승인 2022.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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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시은 시인 첫 시집 출간
시집-소공포
배시은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소공포』(민음사 펴냄 | 배시은 지음)가 출간됐다.

시집 제목 ‘소공포’는 단어 자체로 끊임없는 “그다음 상황”(「자서」)를 만들어 낸다. ‘소공포’를 마주한 우리는 단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작은(小) 공포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그다음, 단어의 정확한 뜻을 알기 위해 검색을 시도할 것이다. 또다시 다음, 단어가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당황한다. 마침내 온라인상에서 그것이 치과나 외과 진료 시 수술 부위에 덮는 초록색 면포를 일컫는 말로 통용되고 있음을 눈치챈다.

‘소공포’의 쓰임새 역시 겹침을 통해 “그다음 상황”을 엿보게 하는 물건이다. 소공포가 수술 부위에 닿는 순간, 구멍을 통해 드러난 부위에서는 우리가 기대하거나, 두려워하거나, 궁금해하는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시집 『소공포』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겹침’들은 어김없이 독자들을 이다음의 공간과 시간으로, 단어와 문장의 우연적 접합이 만들어 낸 의외의 형상 앞으로 데려간다. 배시은이 배치한 상황의 연쇄를 따라 고요한 미지의 모험을 떠나 보자. 다음 장에 도사린 순간은 나의 예측과 얼마나 같을까? 혹은 얼마나 다를까?

『소공포』가 예상치 못한 장면들로 가득한 이유는 배시은이 내용과 형식을 모두 품는 시적 시도에 부지런한 시인인 덕분이다. 배시은의 시는 이미 굳어진 기호에 의외의 내용을 담고, 그것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등 언어와 기호의 특성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홑낫표 기호(「」)를 액자라고 정의하면 무엇이든 액자에 담긴 작품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선언의 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느낌」에 반해 버렸다」가 마지막 행에서 “용기”를 말하며 끝을 맺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인은 언어와 기호의 메커니즘을 깊이 이해하고, 그로부터 시의 이다음 단계를 도모해 보려 한다. “「무엇이든」 액자에 가두”어 보려는 그의 시도와 실험은 용기가 없다면 불가하며, 이 작고 단단한 용기로부터 비로소 그의 시가 미래를 향해 귀중한 발자국을 내딛게 된다.

시집 『소공포』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장면을 향하는 시인의 독특한 시선과 함께 더불어 기존의 형식과 내용을 재배치하여 그 너머를 도모하는 시적 시도가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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