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의 바다 한가운데 섬이 있다. 맨섬(Isle of Man)이다. 아일랜드해 한가운데인데 더블린과 리버풀에서 거의 등거리에 있다. 켈트족 후예들이 주로 산다고 한다. 인구 약 8만의 영국 자치령이다. 나는 오래전 스위스에서 금융법 실무를 할 때 이 섬에서 온 변호사들과 함께 일한 기억이 있다. 그냥 영국 사람들로 보였다.
이 섬은 조세피난처 중 하나다. 역외 금융센터다. 2014년의 경우 정부 수입의 17%가 온라인도박과 보험산업에서 발생했다. 자본이익세, 부유세, 상속세 다 없다. 법인세율도 0%다. 회사의 주주명부 작성 의무가 없어서 탈세에 매우 편리하다. 유럽 각지의 부자들과 도박 같은 문제있는 사업을 하는 회사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일부 원주민들은 그런 회사의 이사나 가짜 주주 역할을 해주면서 소득을 올린다. 자금세탁, 마약거래, 불법 무기거래, 러시아 마피아들의 사업 등등 불법과 범죄의 중간 기착지이기도 하다. 거기서 나오는 돈은 런던의 금융시장으로 흘러들어간다.
영국에서 금융은 대장간 사업자들이 시작했다. 대장장이들이 금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대장간 사업자들이 보유했던 금은 런던타워에 설치되어 있던 왕실 화폐주조청에 보관했는데 찰스1세(1600-1649)가 어느날 그 금을 다 몰수해 버렸다. 그러자 왕실을 믿지 못하게 된 사업자들이 귀족들과도 금 거래를 시작했다. 금을 보관하고 일종의 보관증을 써주었다. 보관증 외에도 제3자에게 반환을 지시하는 서류도 금과 함께 수령했다. 은행권의 시초다. 1650년에 노팅엄의 한 의류 상인이 처음으로 은행을 열었고 1694년에는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이 설립된다. 스코틀랜드은행은 그 한 해 뒤다.
미국 뉴욕이 글로벌 금융의 중심지가 되기 이전에는 영국 런던이 그 역할을 했다. 특히 영국이 대영제국이라고 해서 지금 기준으로 117개국을 침략하고 식민지 경영을 했던 ‘찬란한’ 19세기에 런던은 세계사 최초의 글로벌 금융허브였다. 런던은 지금도 영국 경제를 떠받친다. 국토 면적의 0.001%를 차지하지만 GDP의 3.5%를 책임진다.
런던의 금융기관들은 거의 대부분 씨티(City)라고 불리는 구역에 모여있다. 은행만 500개가 넘는다. 면적이 1제곱 마일 정도로 여의도 크기다. 이 지역은 템스강 가 로마인들의 거주 지역에서 출발했다. 1706년에 건립된 세인트폴 대성당이 시각적으로 지역을 관장하는 것처럼 보이고 금융기관들뿐 아니라 영란은행과 런던증권거래소가 있다. 다수의 정부기관, 법원과 매직서클 로펌도 이 지역에 있다. 거주자는 1만명 정도지만 일하는 인구는 거의 백만명에 가깝다. 그중 4분의 3이 금융과 비즈니스에 종사한다. 조금 더 동쪽이 런던의 신 비즈니스 구역인 카나리 워프다.
영국은 산업혁명을 이끌면서 글로벌 강자로 부상했지만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확고한 선두 경제국가가 되었다. 영국은 미국에 산업국 최강자의 자리를 서서히 넘겨주면서 금융에 무게를 두게 된다. 1979년 10월 영국은 2차 대전 이래로 유지해 오던 외환거래 규제를 전면 폐지했다. 그리고 다시 7년 후에 대대적인 금융규제 완화를 이행했다. 그 파장이 커서 빅뱅(Big Bang)으로 불렸다. 금융혁명에 버금가는 이 조치로 런던은 글로벌 금융 중심의 위치를 되찾는 듯이 보였다.
1986년에 하루 5억 달러였던 증권거래가 1995년에 가서는 20억 달러를 넘어섰다. 금융회사간 M&A도 활발해졌다. 1990년대 런던은 수조 달러 규모의 파생금융시장이 되었다. 2020년 브렉시트가 발효하기 전까지 런던은 뉴욕과 1인자 자리를 다투다가 2023년에 아마도 최종적으로 그 자리를 내준다.
런던의 금융시장은 크고 효율적으로 잘 작동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크 사이드도 있다.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다. 2023년에 영국의 외무부 부장관이 전 세계의 문제 있는 돈 중 40%는 런던의 씨티를 거쳐 유통된다고 한 적이 있다. 주로 아프리카에서 온 돈이다. 러시아 돈도 적지 않은데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더 늘어났다. 그래서 런던은 세계 최대의 자금세탁소다. 범죄자들은 거기서 번 돈을 런던의 고가 부동산에 투자해서 멀쩡한 금융인 행세를 한다. 탈세는 기본이다. 영국 국민들이 가장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 탈세다. 런던은 글로벌 금융 중심지로서의 자존심은 접어둔 모양이다. 김화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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