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향이 선로 위에서 빛나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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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향이 선로 위에서 빛나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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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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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부역에서

- 이봄희





하늘도 세 평, 땅도 세 평이라던가

방금 떨어진 참나무 잎새에 비워진 것까지 친다면

이제 하늘은 월동의 덤을 얻은 셈이리라

영동선의 까마득한 날들이

봉화 쪽에서 속도를 천천히 줄이는 소릴 들으며

나는 사과궤짝 같은 역사의 한 켠에서

다시는 오지 않는 날들을 기다릴 것이다



그동안 오지의 적막들이 여기를 통과했단 말인가

벽면을 긁던 희미한 기다림의 낙서 몇 읽어내다가

4시 40분이라고 쓰인 외마디에

한 순간 소스라친 건

나의 성장기가 나를 기다렸기 때문일까

사과향이 선로 위에서 빛나던 시절

누군가의 뜨거운 맥박이 고단한 삶 속으로 다가올 때면

세상의 밋밋한 맛들이 과즙처럼 흘러내리곤 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소심해졌다면

보무도 반듯이 승부역에 와보라

이곳엔 기적 없이 넘나드는 푸른 심장의 박동들이

종이딱지처럼 옹색한 날들조차

미장의 잣대로 여유롭게 측량하며 머물다 가곤 한다

와서 하늘과 땅,

이 비좁은 세 평의 면적을

수만 제곱으로 기꺼이 확장하는 단맛의 비결까지

면밀히 더듬어 살펴볼 일이다
 

 

.

2018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이렇게 나오겠다이거지,』

5·18문학상신인상, 전태일문학상,

부마항쟁문학상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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