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부역에서
- 이봄희
하늘도 세 평, 땅도 세 평이라던가
방금 떨어진 참나무 잎새에 비워진 것까지 친다면
이제 하늘은 월동의 덤을 얻은 셈이리라
영동선의 까마득한 날들이
봉화 쪽에서 속도를 천천히 줄이는 소릴 들으며
나는 사과궤짝 같은 역사의 한 켠에서
다시는 오지 않는 날들을 기다릴 것이다
그동안 오지의 적막들이 여기를 통과했단 말인가
벽면을 긁던 희미한 기다림의 낙서 몇 읽어내다가
4시 40분이라고 쓰인 외마디에
한 순간 소스라친 건
나의 성장기가 나를 기다렸기 때문일까
누군가의 뜨거운 맥박이 고단한 삶 속으로 다가올 때면
세상의 밋밋한 맛들이 과즙처럼 흘러내리곤 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소심해졌다면
보무도 반듯이 승부역에 와보라
이곳엔 기적 없이 넘나드는 푸른 심장의 박동들이
종이딱지처럼 옹색한 날들조차
미장의 잣대로 여유롭게 측량하며 머물다 가곤 한다
와서 하늘과 땅,
이 비좁은 세 평의 면적을
수만 제곱으로 기꺼이 확장하는 단맛의 비결까지
면밀히 더듬어 살펴볼 일이다
2018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이렇게 나오겠다이거지,』
5·18문학상신인상, 전태일문학상,
부마항쟁문학상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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