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한동윤] ‘한숨 쉬며 뒷짐 진 김기춘’, “김기춘 비서실장은 사임해야 한다”, “비서실장의 ‘리더십 부재(不在)… 청와대 이 지경 되도록 뭐하셨나요?” 3일 아침 인터넷 매체에 뜬 이른바 ‘정윤회 사태’ 관련 기사의 제목이다. 청와대 민정비서실 문건이 외부로 유출돼 박근혜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만든 책임을 김기춘 실장에게 묻는 질책(叱責)이다.
소위 ‘정윤회 사태’는 아무 직책도 없는 정씨가 청와대 권력 3인방과 박 대통령 측근 10명, 이른바 ‘십상시’를 통해 국정개입은 물론 공직인사에 개입했고, 이를 공직기강 차원에서 조사한 박지만씨의 측근이 십상시들과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났다는 것이다. 박지만씨는 박 대통령의 동생이다. 대통령 동생이 정윤회와의 싸움에서 밀려났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스캔들에 속한다.
문제는 이 같은 권력 암투(暗鬪)가 박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시작됐고, 작년 말부터 곪아 터지기 시작했는데도 그 정점(頂點)에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수습은커녕 방관함으로써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한숨 쉬며 뒷짐 진 김기춘’, “김기춘 비서실장은 사임해야 한다”는 제목이 그것이다.
김 실장은 올 1월 ‘정윤회 동향 문건’을 작성한 박모 행정관(경정)과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이 청와대를 떠나는 걸 지켜봤다. 정윤회가 청와대 3인방, 십상시들과 월 2차례 강남에서 만나 김기춘 비서실장 경질을 모의하고, 국정을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는 보고서를 작성, 보고한 직후다. 김 실장은 자신의 신상문제가 포함된 보고서를 재확인하는 절차를 거쳐 무직자인 정윤회가 과연 국정에 개입하는지 확인한 뒤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대신 그는 조응천, 박 경정을 청와대에서 내보냈다. 두 사람은 박지만씨 측근이다.
더 웃기는 것은 김 실장이 ‘정윤회 보고서’가 청와대에서 대량 유출된 사실을 알고도 이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박지만씨가 청와대 문건이 시중에 돌아다닌다는 사실과 함께 문건을 입수해 김 실장에게 전달했지만 박 대통령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고 흐지부지 했다는 것이다. 분명한 직무유기다.
3일 아침 동아일보는 “유령과 싸우는것 같다”는 김 실장의 푸념을 제목으로 올렸다. ‘비선(秘線) 실세’ 논란 당사자인 정윤회씨 관련 청와대 문건 유출과 관련해 그 같은 심경을 토로했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최근 친박 의원과 통화에서 “(청와대가 작성한 문건 내용을) 보고받은 것은 사실”이라며 전후 사정을 설명한 뒤 곤혹스러워했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보고된) 내용을 보면 사실 확인이 안 돼 있고, 증거도 없었다”며 “(내 선에서) 묵살했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문건을 둘러싼 사태 확대가 자신에게 있음을 시인한 셈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그 동안 수많은 위기를 넘겨왔다. 그가 손대는 공직인사가 제대로 된 게 없을 정도다. 문창극 총리후보가 대표적이고, 최근에는 “북핵은 자위용”이라는 식으로 옹호한 김상률 청와대 교육문화수석도 그의 작품이다. 금융권을 서강대 출신들이 점령해도 그는 해명 한마디 없다. 세월호 침몰 당일 박 대통령의 ‘7시간’ 루머를 낳은 주인공도 그다. 박 대통령의 동선(動線)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박 대통령이 비밀스런 행동을 한 것처럼 일본 산케이 신문이 쓰도록 토양을 마련한 게 바로 그다.
온갖 위기를 넘어온 김 실장의 운명은 이제 기로에 섰다. 작금 벌어진 정윤회 사태는 종전의 스캔들이나 추문과 성격이 다르다. 박 대통령의 도덕적 기반을 허물 수 있는 대형 악재(惡材)다. 박 대통령이 이번에도 김 실장은 기어코 감싸고 갈 수 있을까? “유령과 싸우는것 같다”는 김실장, ‘한숨 쉬며 뒷짐 진 김기춘’과 어떻게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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