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 정재모] ‘경상도 청하군에 우박이 내려 채마가 모두 상했다.’ 조선왕조실록 중종18년 조 중의 한 줄이다. 청하군(淸河郡)은 포항시 북구 일부를 관할하던 행정구역으로 지금도 청하면이란 지명에 그 이름이 살아 있다. 이로 보아 포항에는 먼 옛날부터 채소재배가 성했던 듯하다. 어떤 채소였을까. 딴 지방 것에 비하면 맛이 각별해 지금껏 인기가 면면히 이어져오는 시금치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볼 수 있다. 시금치는 ‘포항초’로 오늘날도 전국에 이름난 지역특산물이다.
가뭄에 시달리던 대지에 가을비가 넉넉히 내려 갈증을 푼 것까진 좋았다. 그런데 이 가을비 때문에 포항에선 지금 또 다른 ‘난리’ 하나를 겪고 있다. 따뜻한 날씨에 비가 잦으매 포항초가 웃자라버렸다. 곰팡이마저 슬어 상품가치를 크게 잃었단다. 주산지 한 농민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500g 한 단의 값이 고작 300~400원이란다. 1000~1500원은 받아야 영농수지가 맞을 터인데도 이 지경이다. 농민의 표정은 비가 오락가락하는 요즘의 하늘빛만큼이나 어둡다.
겨울철 바닷바람이 유난히도 차가운 동해안 포항의 시금치를 언제부터 ‘포항초’라 불렀을까. 어쨌든 ‘포항초는’ 브랜드가 되어 진작부터 ‘한국의 맛’으로 손꼽혔다. 뿌리부분 줄기가 붉어서 맛이 더 들큼한 ‘포항초’다. 그 맛을 올해는 가을비 때문에 놓치게 될 건가. 아니 그보다 400~500여 명에 이르는 농민들의 수지(收支)적자가 더 걱정이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린 가을비인지라 모두가 반가워했었다. 그렇건만 그로 인해 시금치와 부추 등속의 ‘포항채마’는 큰 피해를 입었다니 안타깝다. 세상만사에 있다는 ‘음양의 이치’란 게 이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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