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곡보다 더 애잔하게 풀어낸
송가인 노래‘한 많은 대동강’
어르신·중장년층 심금 울리고
뛰어난 가창력에 젊은층 반해
고루한 구시대적 산물 치부된
‘한국 정통 트로트’부흥 견인
반짝 유행 아닌 모든 계층세대
아우르는 국민 대통합 음악
진짜 대중음악으로 거듭나길
[경북도민일보 = 모용복기자] 최근까지 본지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던 전(前) 대학교수로부터 며칠 전 SNS로 동영상을 받은 적이 있다. 종편채널의 인기 프로그램인 ‘내일은 미스트롯’에서 수상한 무명(無名) 가수들의 영상이었다. 뉴스와 입소문을 통해 미스트롯이 어떤 프로그램인지 대강은 알고는 있었지만 텔레비전이나 동영상으로 본 적은 없어 호기심을 갖고 링크된 주소를 클릭했다. 미스트롯 경연에서 1위를 차지한 송가인이라는 가수의 노래하는 모습이었다.
“한 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 있느냐/모란봉아 을밀대야 네 모양이 그립구나/…편지 한 장 전할 길이 이다지도 없을 소냐/아 ~ 썼다가 찢어버린 한 많은 대동강아” 몸을 전율케 하는 열창이었다. 원로가수 고(故) 손인호·한복남 선생 이후 ‘한 많은 대동강’ 노래를 이렇게 가슴으로 토해내는 가수는 처음이었다. 아니 그 보다 더 구성지고 애잔했다. 무명에다 나이도 많지 않은 가수가 가족을 북에 남겨두고 생이별을 하게 된 이산의 아픔을 이토록 절절히 풀어내는 게 놀라웠다.
정통 트로트 노래로서 익히 잘 알려진 ‘한 많은 대동강’은 그동안 가요무대를 통해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애창돼 왔지만 송가인 만큼 구슬프고 구성지게 부른 가수는 없었던 것 같다. 노랫말처럼 송가인의 노래에는 확실히 한(恨)이 서려있었다. 트로트가 생소할 수도 있는 젊은 가수가 어떻게 노랫가락에 이토록 절절한 한을 실을 수 있었을까? 이러한 궁금증은 그리 오래지 않아 풀렸다. 인터넷의 바다를 헤엄칠 필요도 없이 살짝 발만 담갔을 뿐인데 그녀에 관한 기사들이 꽤나 많았다.
송가인의 한은 어머니에게서 비롯된 것 같다. 어머니 송순단씨는 국가 무형문화재 72호 진도씻김굿 전수자인 무녀로 알려졌다. 오빠 또한 국악연주단체 ‘바라지’에서 아쟁을 연주하고 있다고 하니 어머니에게서 남매(男妹)는 목소리 뿐만 아니라 한국인 특유의 한의 정서를 물려받았음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거기다 판소리를 전공한 까닭에 판소리 특유의 창법을 트로트에 접목시켜 노래를 더욱 깊이 있고 구성지게 풀어낼 수 있었다. 특히 감정이 고조되는 고음부분에서 목소리가 가늘어지기보다 허스키보이스처럼 걸쭉해지짐을 느낄 수 있는데 이는 판소리의 영향을 받은 결과다. 이처럼 판소리와 트로트가 조화를 이룬 오묘한 목소리에 국민들은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트로트는 서양의 댄스리듬인 폭스트로트와 일본 고유의 민속음악인 엔카의 영향을 받았지만 일제 강점기 때 출발한 우리 트로트는 한민족 고유의 한의 정서에다 엄혹한 시대를 견딜 수밖에 없는 고되고 애달픈 심정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국민들의 한을 풀어내고 심금을 울리는 장르로 발전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한국의 정통 트로트다. 그러다 해방이 되고 한국전쟁과 민주화, 개방화시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이 유입되고 쏟아져 나오자 트로트를 버리고 세미 트로트라는 미명하에 정체불명의 이상야릇한 노래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그러나 그 그릇은 한국인의 전통도 미래도 담을 수 없었던 까닭에 국민들로부터 철저히 외면 당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 송가인의 ‘한 많은 대동강’ ‘용두산 엘레지’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들으며 우리가 가슴 울컥해 하지만 30대의 젊은 가수가 50~60년 전 노래를 부를 수밖에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것은 지난 수 십년 간 한국인의 정서를 제대로 담아낸 트로트 노래가 없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음악인이라면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지금 송가인 열풍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또한 정미애, 홍자 등 미스트롯 스타들이 펼치는 전국 순회 효 콘서트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수많은 관객이 몰려들고 있다. 한국의 정통 트로트 음악이 다시 한 번 부흥할 절호의 기회가 도래한 것이다. 젊은 층도 우리 전통 음악을 충분히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을 미스트롯이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언제까지나 흘러간 옛 노래를 들고 국민에게 다가갈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정서에 부합하는 노랫말과 곡을 발굴하는 노력을 경주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열풍은 한 때의 돌풍으로 사그라질지도 모른다. 지금부터가 시작이고 중요하다.
나는 한 때 모 방송 프로에서 20대의 가수지망생을 향해 “은퇴할 시기가 아니냐”며 악담을 늘어놓던 어느 시답잖은 멘토의 패악질을 보고 ‘한국 대중음악은 죽었다’고 탄식한 적이 있다. 그의 머릿속에는 가수라면 당연히 아이돌 뿐일 것이다. 그도 철없던 시절에 데뷔해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으니까. 그러한 편협한 사고를 지닌 멘토들이 쏟아내는 음악으로 인해 세대간 단절이 심화됐으며, 특정 계층과 세대는 음악으로부터 갈수록 소외돼 갔던 것이 사실이다.
계층과 세대를 아우를 수 있어야 진정한 대중음악이라 할 수 있다. 남녀노소 할 것없이 함께 어울려 노래하고 즐길 수 있으려면 거기에 우리 고유의 정서가 깃들어야 한다. 노랫말 뿐만 아니라 가락에도 마찬가지다. 미스트롯 스타 송가인의 열창에서 그러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의 한 맺힌 구성진 목소리가 어디까지 울려 퍼질지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볼 일이다. 모용복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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