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 최시형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포항 ‘검등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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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월 최시형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포항 ‘검등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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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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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포항사람 해월 최시형, 검등 포덕
포항시 북구 신광면 마북리 위치
동학 성지로 인적 드문곳에 자리
해월은 동학 도호로 시작일 기록無
1889년 인장 ‘해월장’사용해 추정

서른다섯 되던 해, 하늘 소리 들은
수운의 제자 되기위해 경주 용담行
소박하고 평범한 삶의 진리 깨달아

돌아온 검등골서도 신비로운 체험
도피생활중 호남까지 깨달음 전파
도인 사이서 ‘검등 포덕’이라 불려
해월 최시형 순교 터 (옛 단성사 극장 앞)
해월 최시형 순교 터 (옛 단성사 극장 앞)

동학(천도교)성지 ‘검등골’은 인적이 드문 깊은 산골짜기다. 후일 동학 2대 교주가 된 해월 최시형이 살았다는 집터가 있다. 주민들도 80년 대 중반까지 주민 서너 가구가 살고 있었다고 전한다.

검등골은 경북 포항시 북구 신광면 마북리에 속한다. 신광의 명산 비학산 북쪽 산줄기 괘령산 자락이다. 지금은 축대와 감나무, 대숲 등만 남아 있다.

가는 길은 상마북지 왼쪽 산자락 길과 끝 지점에서 계곡을 따라간다. 30여 분간 올라가다 계곡이 비좁아질 무렵 왼쪽 20여m 가파른 언덕 위다. 지그재그 좁은 산 길을 올라서면 70여 평 가량 계단식 공터가 있다. 구획 정도로 보아 네 집 정도로 추정된다.

생활공간으로 우물과 뒷간 흔적도 남아 있다. 주변에는 너른 계단식 밭 터가 있지만 현재는 농사를 짓지 않고 있다.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며, 마북리 방향으로 과거의 논밭을 적시고 흘렀으나 지금은 하류 상마북지에 고여 있다.


동대해문화연구소 회원들이 도올 김용옥 선생과 함께 집터를 답사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동대해문화연구소 회원들이 도올 김용옥 선생과 함께 집터를 답사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주 출생 후 포항과 영덕 거쳐 한지 생산

해월은 1821년 3월21일 외가 경주 황오동에서 태어난다. 아버지는 최종수, 어머니는 월성 배씨다. 다섯 살 때 모친상을 당해 아버지는 재취 영일정씨를 맞이한다.

그러나 15~16세 때 아버지마저 별세하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다. 의지처가 사라진 해월은 동생을 데리고 경북 포항 신광면 기일리(속칭 터일리)로 이사한다. 기일은 아버지의 묘소가 있고 친척이 사는 마을이었다. 닥나무가 많고 물이 맑아 한지생산 공방도 있었다. 친척집에 수 년 간 의탁해 지내던 그는 17세 나던 해 한지생산 직공이 된다. 19세 때 이웃 중매로 흥해읍 매산리 밀양 손 씨와 결혼한다.

이 무렵 영덕·청하·흥해·경주 등지로 한지도 배달한다. 28세 때인 1845년 마북리로 이사한다. 여기서 성실함을 인정받아 이장격인 집강을 맡기도 한다. 그리고 서른 세 살 나던 해 북쪽 마북리 깊은 산중 검등골로 이사한다. 화전을 일궈 농사를 짓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집터 안내 입간판.
집터 안내 입간판.

▲동학 수련 중 깨달음으로 큰 진리를 얻다

이 무렵 경주 용담에서 도를 펼친다는 이인(수운 최제우)의 소문을 듣는다. 서른다섯 나던 1861년 6월 해월은 용담으로 간다. 수운을 만나 곧 바로 제자 되기를 청하고 동학에 입도한다. 스승은 자신이 가르쳐준 주문을 열심히 외우면 ‘하늘의 소리’가 들리고 깨우침이 온다고 가르친다.

해월은 정성을 다해 수련을 시작한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은 다 들었다는 소리가 자신에게는 정작 들리지 않았다. 해월은 수심정기 3개월간 용맹정진 수련을 한다. 방문에 멍석을 드리워 햇빛을 가린 채 캄캄한 방안에서 주문을 외우기도 했다. 그리고 정성이 부족하다고 보고 20여 일간 곡기도 끊어본다. 하지만 몸만 수척해진다. 끝끝내 하늘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 이듬해 1월 중순 어느 날 답답한 마음을 못 이겨 집 앞 골짜기 찬물에 몸을 담근다. 그때 하늘에서 언뜻 소리가 들리는 신비스런 체험을 한다. ‘따뜻한 몸으로 갑자기 찬물에 들어가면 몸에 해롭다’라는. 진리라고 하기엔 참으로 소박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후일 삶 속에서 터득한 진리가 가장 위대한 진리임을 깨닫게 해준 귀중한 체험이 된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해월 집터에서 참배를 하고 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해월 집터에서 참배를 하고 있다.

▲스승 수운의 재회와 평범한 진리의 깨달음

스승은 영남 양반 유림의 박해를 피해 남원으로 피신 간 몸이었다. 해월은 그렇지만 하늘의 소리를 들은 뒤 스승을 몹시 뵙고 싶었다. 스승이 떠 난지 7개월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참으로 우연히 경주 도인 박대여 집에 들렀던 그는 반가운 스승을 만난다. 수운이 마침 경주에 와 있었던 것이다. 해월은 자신의 체험을 얘기한다. 그러자 수운은 언제인지 날짜와 시간을 묻는다. 대답을 들은 스승은 ‘내가 그날 밤 요즘 도인들의 공부 방법에 문제가 많아 경계할 내용을 글로 적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쓴 글의 초안을 집 밖에 나가 밤하늘에 대고 외어본 적 있다”며 “그때 그 소리가 너에게 들린 것”이라고 대답해준다. 사람과 사람 우주 만물은 원근을 떠나 마음이 맑으면 상통한다는 진리였다. 이때 수운이 쓴 글은 다른 경계의 글과 함께 동학경전 ‘수덕문’의 한 구절로 기록돼 있다. ‘따뜻한 몸이 갑자기 찬물에 들어가는 수행은 부질없는 고행일 뿐 건강을 해친다며 경계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평범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만한 진리가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른다.


마북지에서 바라본 검등골.
마북지에서 바라본 검등골.

▲검등골에서 동학 확산의 발판 마련

해월은 스승의 검증을 받았으나 검등골로 돌아와 힘든 수련을 지속한다. 이때 또 다른 이적을 체험하게 된다. 기름이 반 종지뿐인 등잔불을 여러 날 밤새워 켜 놔도 닳지 않았던 것이다. 영덕 도인 이겸이 기름을 한 종지 갖고 와서 등잔에 붓는 순간 기름은 순식간에 말라버렸다. 지금까지 반 종지로 스무 하루 밤을 밝혀왔던 것이다. 검등골에서 해월이 체험한 이적은 이 두 가지였다. 아니 이적이라기보다는 순수한 마음과 바른 기운,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는 성실함을 다하면 나타나는 신비한 현상이 아닐까 싶다.

스승은 해월이 1년도 안 돼 지극한 수행으로 도를 깨우치자 마침내 포덕 지시를 내린다. 해월은 한지공방에서 생산한 한지를 경상도 일대로 배달하는 일도 겸하고 있었다. 이 덕분에 영해, 영덕, 상주, 흥해, 예천, 청도 등지 많은 사람들을 사귀었다. 그는 수운의 가르침을 이들에게 권한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동학에 입도시킨다. 검등골에서 퍼져나간 교세는 이듬해 경상도 경계를 넘어 강원, 충청도를 확산된다. 이를 두고 도인들 사이에는 ‘검등 포덕’이란 말이 나돈다. 검등골이 이후 전국적인 반봉건 반외세 혁명의 출발지가 된 것이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해월 집터에서 참배를 하고 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해월 집터에서 참배를 하고 있다.

▲도피와 확산의 36년, 1898년 순절

해월이 동학을 포덕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나자 경주감영은 그를 체포하려고 검등골에 포졸 30여명을 보낸 적이 있다. 그런데 집을 포위하고 잡으려고 하자 해월은 집안에 둔 생삼 한 묶음으로 그들을 단숨에 제압한다. 이들이 노린 것은 현상금이었다. 그러나 젊은 시절 한지공방에서 힘든 작업으로 단련된 해월은 힘이 장사였다. 포졸들이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해월은 이들이 굴복하자 잘 타일러 돌려보낸다. 이후 검등골에는 관헌들의 단속 손길이 미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해월의 본명은 ‘경상’이고 자는 ‘경오’다. 해월은 동학 도호지만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명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1889년부터 접주 또는 육임직 첩지 등에 인장 ‘해월장’을 사용한다. 해월은 이때부터 불리게 것으로 추정된다. 시형은 1875년 동학지도자들과 제례를 지내고 바꿔 부르게 된 이름이다. 스승의 순도로 도통을 이어받은 해월 역시 조정과 유림의 핍박을 받으며 36년간 도피생활로 전전한다. 그러나 이 기간 동학은 영남을 넘어 강원, 충청, 호남까지 석권하게 된다.

해월은 1897년 제자 의암 손병희에게 도통을 전수한다. 해월은 1898년 4월5일 강원도 원주 송골 제자 원 덕 여 집에서 피체된다. 그리고 한양으로 압송돼 교수형을 언도 받고 1898년 6월2일 서울 좌포도청(현 단성사 터)에서 순도한다.

 

 

 

 

글·사진=김상조 역사문화답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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