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행정통합은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거지로 살아남는’ 선택을 거부하는 일종의 전략적 선택이다. 전략적 선택이라고 하지만 따지고 들면 현재로는 뾰족한 다른 방안이 없는 외통수의 선택이다.
한동안 대구시와 경상북도는 함께 잘살아 보자는 방향에서, 살림을 합치는 정도는 아니지만, ‘대경권’이라는 초광역 단위 차원에서 대구시와 경상북도를 구분하는 울타리와 칸막이를 뛰어넘어보려고 시도해 보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어떠한 실질적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협력적 노력에 불신만 키웠다. 그 와중에 수도권에 버금가는 경제력은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았지만, 수도권과의 격차는 오히려 확대되고 ‘거지화’에 따른 지역민의 상대적 상실감은 깊어지게 되었다.
대구경북의 ‘거지화’를 보여주는 가장 적나라한 모습은 지역으로부터 청년 세대의 끊임없는 탈출이다. 어떤 전도유망한 청년이 ‘거지화’되는 지역에서 장래의 희망을 찾을까? AI 혁명이 진행되는 전세계적 기술 환경의 혁명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청년을 비롯한 창조 계급이 등을 돌리는 곳에 새로운 투자가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더불어 괜찮은 일자리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구시와 경상북도가 하나의 행정 단위로 통합이 되면 청년 세대는 지역에 안착을 하게 되고, 괜찮은 일자리도 생기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보다 중요하게는, 대구경북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보통 사람이 지금보다 훨씬 나은 넉넉한 형편의 삶을 누릴 수 있을까? 말할 필요도 없이, 대구경북행정통합이 그 자체로 이러한 기대에 부합하는 직접적 성과를 만들어내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대구경북행정통합의 결과는 이를 계기로 지역 혹은 지역민 전체가 감당하고 실천해야 할 혁신의 내용과 성격에 달려있다.
슘페트는 혁신을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혹은 연속적 돌풍(perennial gale)의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대구경북행정통합은 두 개의 광역 행정단위가 하나로 ‘통합’되는 제도적 형식을 띠고 있지만, 그 실질적 내용은 ‘파괴’와 ‘돌풍’의 과정을 수반하는 창조적 혁신의 과정으로 채워져야 기대하는 결과가 도래하는 담대한 도전의 길이다. 보다 솔직하게 말하면, 대구경북행정통합이 가져올 미래의 성과는 ‘파괴’와 ‘돌풍’이 필연적으로 부과하게 될 사회적 비용을 지역민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그리고 과감하게 부담할 수 있는 여부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대구경북행정통합을 계기로 추구해야 할 ‘혁신’의 내용과 성격은 지역 내부와 바깥의 두 가지 차원에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우선, 대구경북 내부의 혁신은 이른바 ‘거지론’이 반성없이 유통되는 지역 내부의 패배주의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 대구경북행정통합을 통해 대구경북은 지역 주민의 삶의 개선을 위해 필요한 ‘구상과 실행’의 전 과정을 스스로 책임지는 지역으로 완전히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 주민 자치권의 대폭적인 강화를 통해 지역 공동체의 자치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지역 내부에는 수도권 중심주의에 편승하거나 혹은 이른바 ‘거지론’을 이용하여 지역민의 전체 이익을 희생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긴 그룹이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자생하고 있다. 지대추구(rent-seeking) 행위에 특화되어 있는 기득권 그룹이다. 이 가운데에는 상호 고립된 행정 단위 내부에서 할거하면서 정치적 이해를 공유하는 정치인 집단도 있다. 이들은 대체로 대구경북행정통합에 의한 ‘파괴’와 ‘돌풍’이 만들어내어 직면하게 될 불확실성을 우려하며 퇴행적인 복고주의적 태도를 고집하고 있다. 이러한 기득권 그룹의 저항과 지역주민에 의한 민주적 의사 결정을 분리하여 식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대구경북행정통합과 지역 혁신을 위해 필연적으로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다.
다음은 지역 바깥에서 진행되어야 혁신이다. 수도권으로의 쏠림과 집중 현상이 대구경북의 ‘거지화’를 초래한 중요한 외부적 요인이다. 수도권 일극 현상으로 인한 한국 사회의 양극화 현상은 이미 그 임계 지점을 넘어 폭발의 위험에 근접하고 있다. 대구경북행정통합이 요청되는 이유는 이를 통해 수도권 중심주의를 해체하고 한국 사회를 다극화 사회로 전환시키는 것의 절박성이다. 대구경북 행정통합 특별법에 포함된 많은 특례는 수도권으로의 쏠림 현상으로 인한 발생된 비정상적 상태를 정상적 균형으로 되돌리기 위한 혁신적 조치들이다.
수도권 중심주의자는 수도권의 쏠림 현상이 비수도권의 고질적 비효율성에 의해 초래된 것이기 때문에 한국 경제의 효율성 극대화를 위해 중앙정부가 지역의 행정단위를 쪼개어 통치하는(divide and rule) 방식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수도권 중심주의자의 시대착오적인 편견에 대응하기 위해서 대구경북은 물론이고 부울경, 광주전남 등의 지역에서 광역단위의 행정 통합이 동시에 진행될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하고 공동 전선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이를 기반으로 독자적인 남부권 경제권을 만들어지게 되면 수도권 일극체제의 해체와 이를 통한 한국 경제의 구조적 대전환을 향한 ‘돌풍’이 불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동원되어야 하는 다양한 정치 및 사회경제적 자원 역시 대구경북행정통합을 위해 주체적으로 감당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다. 김영철 계명대학교 경제금융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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