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민일보]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고(故) 백설희씨가 부른 ‘봄날은 간다’의 첫 소절이다.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이라는 가사가 서정적이지만 다소 퇴폐적인 분위기도 감돈다. 그래서 이 노래는 젓가락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방석집이나 주막에서 들려오기 십상이다.
그 간드러진 노랫소리가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아침 나절에 들려왔다. 당사 지하나 식당이 아니라 문재인 대표가 주재한 최고위원회의에서다. 노래를 부른 이는 유승희 최고위원이다. 그는 “오늘이 어버이날인데 어제 경로당에서 인절미에 김칫국을 먹으며 노래 한 소절을 불러 드리고 왔다”며 “연분홍 치마가…”를 불렀다.
그러자 추미애 최고위원은 “오늘 분홍색 옷까지 입고 오셨는데, 끝까지 불러주셨으면 했는데 한 소절만 들려줘 아쉽다”고 했다. 유 최고위원은 환하게 웃으며 “감사하다”고 답했다. 여야가 개악(改惡)해 국민 여론이 비등하는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최고위원회의의 황당하고 민망한 모습이다. 이게 제1야당의 현실이다.
그러자 주 최고위원은 “공개 석상에서 치욕적이다. 나는 공갈치지 않았다”며 “저는 사퇴한다. 모든 지도부도 사퇴해야 한다”고 소리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문 대표가 복도까지 따라 나가 말렸지만 주 최고위원은 의원회관 자기 방으로 가버렸다. 유승희 최고위원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가 흘러나온 건 바로 이 순간이다. 제1야당 최고위원 회의장이 마치 방석집처럼 되어버렸다. 이 바람에 공무원연금 개혁, 연말정산 소급을 위한 소득세법 등 민생법안 처리 문제는 아예 논의되지도 않았다.
문 대표는 정청래 최고위원의 ‘막말’에 대해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사과하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정 최고위원은 “사과할 일은 없다”고 했다. 그러자 새정연 이언주 의원은 페이스북에 “정 최고위원은 겉으로 문 대표를 위하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실제는 자기 장사를 했다”며 “정 최고위원은 이 사태의 책임을 지라”고 했다. 일부 의원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상습적으로 막말을 해온 정 최고위원의 공개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는 서명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최고위원의 사과와 책임을 묻는 서명을 받는다면 최고위원 회의장에서 “연분홍치마…”를 불러댄 유승희 최고위원의 사과와 책임도 물어야한다. 유 최고위원이 간접 사과했다지만 눈감아줄 일이 아니다. 연분홍 치마뿐만 아니라 새정연의 위상과 지지도가 휘날리는 마당 아닌가.
저작권자 © 경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북도민일보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