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깊어가면 나뭇잎이 나무와 결별하듯, 우리는 서로의 삶에서 잠시 머물다 떠나며 그 순간의 아름다움과 아쉬움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모든 만남은 언젠가 이별을 준비하며, 이별은 또한 새로운 만남의 시작을 알리는 전환점이다. 인생의 무대에서 우리는 매일 새로운 인연이라는 각본을 읽고 있다.
경북도민일보에서 19년이라는 긴 시간을 몸담았던 모용복 국장이 8월말로 떠났다. 필자와 그의 인연은 2년 남짓 짧은 만남이기에 아쉬움이 앞서며 ‘시절인연’을 생각하게 했다.
‘시절인연’은 사람과 사람, 혹은 사람과 사건 간의 인연을 의미한다. 모든 사물과 사건이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인과의 법칙에 따라 맞물려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이는 우리의 삶에서 만나는 인연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과거의 행위와 그에 따른 결과로서의 필연성을 지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절인연의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노사연의 ‘만남’ 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1989년에 발표되었으며 노사연의 대표적인 히트곡 중 하나로, 사랑의 시작과 만남의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두 사람의 만남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그들의 과거와 현재가 얽혀 있는 필연적인 결과임을 암시한다. 노랫말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이러한 인연의 깊이를 잘 드러낸다. 이는 과거의 인연이 현재의 순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지”라는 구절은 인연의 필연성을 강조하며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또한 인연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하는지를 이야기 하며, 현재의 선택이 미래의 인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결국 서로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중국 명말의 승려 운서주굉(雲棲株宏, 1535~1615)은 그의 저서 『선관책진(禪關策進)』에서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자연히 부딪혀 깨쳐서 소리가 나듯 척척 들어맞으며 곧장 깨어나 나가게 된다”라는 구절을 통해, 인연이 도래하는 순간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이 말은 인연이 단순한 외부의 힘이 아니라, 내면의 준비와 인식이 맞물려 작용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불교에서 ‘업’이라는 개념을 세 가지 시간적 차원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를 통해 시절인연의 개념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순현업(順現業)은 현재 생에서 지어지고 현재 생에서 결과를 보는 업입니다. 봄에 볍씨를 심고 가을에 수확하는 것처럼, 현재의 행동이 즉각적인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 이는 시절인연이 현재의 상황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순생업(順生業)은 전생에 지어졌거나 금생에서 지어져 내생에 결과를 보는 업이다. 이번 생의 인연으로 인해 내생에서 다시 만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는 인연이 시간의 흐름을 초월하여 작용함을 나타내며, 우리의 현재 경험이 과거의 행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시사한다.
순후업(順後業)은 여러 생에 걸쳐서 받는 업으로, 큰 공덕이나 죄업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경우이다. 우리의 현재 삶이 단순히 현재의 선택이 아니라, 과거의 행위와 인연의 결과임을 강하게 인식시킨다.
오늘날 시절인연은 우리가 삶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기회와 인연이 우연이 아니라, 그 시점에서의 준비와 인식이 맞물려 이루어진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인연은 우리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직장에서의 동료나 친구와의 관계는 새로운 직업 기회를 가져다 줄 수 있다. 긍정적인 인연은 우리의 자아를 발전시키고, 부정적인 인연은 성장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인연을 맺을 것인지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특정한 시점에 만난 사람들은 그 시점의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학창 시절의 친구들은 그 시절의 기억을 바탕으로 특별한 유대를 유지하게 된다. 현대의 소셜 미디어는 과거의 인연을 쉽게 유지할 수 있게 하지만, 진정한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소통과 관심이 필요하다. 최근의 연구는 이러한 지속적인 관계가 개인의 정신적 안정과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었다. 이는 시간이 지나도 인연이 지속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신은 한쪽 문을 닫으면, 다른 쪽 문을 열어 두신다’라는 아일랜드 속담이 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계절의 문턱에서, 변화와 인연의 진리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야 할 시점에 있다. 모용복 전 국장의 개인적인 변화와 함께 경북도민일보와 직원들에게도 시절인연의 빛을 따라, 인생의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긍정적인 인연을 맺어가기를 기대한다.
김희동 편집국장 직무대행
저작권자 © 경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북도민일보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